회원 일반산행기 - Report
속초 청호동 아바이 마을(2009년 2월 6일)

<사진 1> 등대전망대에서 본 속초항과 청초호
강릉에서 지형학회가 있어 다녀왔다. 현재 주류 지형학자들의 관심은 주로 제4기 편년에 관한 것으로, 하안단구나 해안단구가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1박2일 동안의 답사가 주로 이들 지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형학, 아니 지형분류학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불만이다. 답사가 일부 연구자들을 위한 토론의 장일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명의 대학원생들이 참여하는 학회답사는 학문 후속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이라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학회답사에서는 다양하고 전형적인 지형을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 입장이지만, 주류 지형학자들과 생각이 다르니 아쉽기만 하다.
멤버쉽에 충실하느라 부산에서 그 멀리 강릉까지 간다지만 기계적인 발표와 진부한 답사를 생각하니 본전 생각이 났다. 궁리 끝에 그 동안 가고 싶었던 속초 아바이마을을 학회 시작전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새벽 6시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홍천 IC를 나와 44번국도로 미시령을 거쳐 속초에 도착하니 12시경이었다. 습관처럼 조망점을 찾았으나 변변한 곳이 없어 해안가에 있는 속초등대전망대를 올랐다. 날씨도 날씨지만 예상대로 별반 소득이 없었다.
속초에는 청초호와 영랑호 두 개의 석호가 있고, 이들이 도심과 어우러져 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항구도시라기보다는 호반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주변의 산이 낮아 높은 곳에서 석호의 모습을 온전히 조망하기 어렵고, 엑스포타워가 있지만 청초호에 너무 가까이 있어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울산바위나 미시령 옛길 휴게소에서 두 개의 석호 모두를 확인할 수 있으나 너무 멀리 있어 그 정도로는 불만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석호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아직 없어 조만간에 찾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이 진행 중이다.
이 사진은 속초등대전망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동해안의 여러 석호와 마찬가지로 속초의 청초호 역시 만입지를 만구사주가 막아 형성된 전형적인 석호이다. 1930년대 청초호를 항구로 개발하기 위해 만구사주의 입구를 터서 수로를 확보하고 만입지 북쪽에 어항을 개발했는데 이곳이 현재 속초의 시가지 중심이다. 만구사주는 방파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 석호 내부에 항구를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사진 중앙에 있는 청호대교는 만구사주 위에 건설된 교량으로 이 다리 좌우가 바로 아바이마을이 있는 속초시 청호동이다. 조만간에 이 다리 밑으로 새로운 수로가 만들어지면 아바이마을은 둘로 나뉘어질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까지 속초는 38도선 이북에 있는 반농반어의 평범한 동해안의 시골마을이었다. 1.4후퇴와 더불어 피난 온 북쪽 사람들은 당시 국군 제1군단 주둔지 부근이었던 청초호 바닷가 모래톱에 정착했는데, 주인 없는 이 땅을 피난민들끼리 조금씩 양보하면서 마을을 형성한 것이 오늘날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기원이다. 이들은 언젠가 돌아갈 고향 가까운 곳에서 북녘 고향을 그리면서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오징어, 명태, 꽁치, 멸치 등 잡은 생선을 말려 갯배를 이용해 속초항으로 날랐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도 사왔다.
현재는 만구사주 바깥에 대규모의 방파제가 있지만 1968년 태풍 당시에는 집채만 한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그날을 그리며 묵묵히 생업에 종사했지만 태풍에 자신들의 분신과 같았던 어구와 어선를 잃어버리고는 망연자실했고, 이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이곳은 어업이 주산업이었지만 어획량의 감소로 이곳 주민들의 생활은 날로 열악해지기만 했다. 2000년 송혜교, 원빈, 송승헌 주연의 드라마 가을동화는 이곳을 동해안 최고의 문화체험관광명소로 바꾸었으며, 청호동 한가운데 있는 단천식당은 관광객들로 연일 만원이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변에 허물어져가는 집들은 정착 당시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사진 2> 단천식당
단천식당 말고도 식당은 여럿 있었지만, 유독 단천식당만 인터넷과 방송으로 유명세를 탔고 브랜드 좋아하는 우리들 허세 덕분에 나머지 식당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아바이순대, 편육, 함흥냉면에다 소주 한 병을 끼워 일행과 함께 즐겁게 식사를 했다. 하지만 이들 음식 맛은 거의 전국적으로 평준화되어, ‘아 이 맛이구나’ 하면서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었다. 발표 끝내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만난 이선복교수의 독설에 맞대응하며 독한 술을 넘기느라 정말 오랜만에 대취했고 그 여파는 몇 일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었다.
아바이 마을은 속초시가 추진하고 있는 도심과 청호동을 잇는 구수로 교량 신축과 현재 청호대교 밑을 지나는 신수로가 완공되면 섬으로 변하게 된다. 속초시는 2011년 신수로 공사가 완공되기 전에 주민들의 집단 이주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주 대상지역은 청호동의 끝자락에 있는 소위 '신포 마을(청호동 9통)'이다. 조만간 우리는 역사의 또 다른 현장을 잃게 된다. 아마 물경 6시간을 운전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도 잊혀져가는 그 무엇에 대한 허무가 아니었을까? 이 역시 나이 먹으면서 친구하자며 등장하는 흔한 감정이라 거부하기도 힘든다.

<사진 3> 삼척 봉황산에서 바라다본 삼척항
대학원생 탁군에게 조선계 습곡으로 유명한 무지개바위의 급경사를 올라 건너편 상거노리의 하안단구 사진을 무리하게 찍게 했던 일, 오는 길에 삼척 봉황산 정상에 올라 미앤더코어, 하안단구, 돌리네를 찍으려 했으나 적당한 조망점이 없어 실망했던 일, 삼척시 원덕면에 있는 해신당 성박물관에 가지 못했던 일, 모두 추억으로 간직하겠지만 무언가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先酒後麵. 아바이마을의 정통 함흥냉면과 강원도 막국수, 그리고 울진 해주반점의 작장면까지, 국수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제법 입 호사를 했던 학회였던 것 같다.
다음은 석호의 형성과정에 대해 쉽게 써보려 했으나, 지형학이 원래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내공이 부족한지 역시 어렵다.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읽지 마시기 바란다.
<참고 : 석호의 형성과 해수면 변동>
지형학적으로 석호는 빙기 저해수면 당시의 계곡이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되어 만입지가 형성되고, 만입지 입구를 만구사주(bay mouth bar)가 막아 만들어진 자연호수이다. 석호로 유입되는 유량이 많은 계절에는 만구사주를 넘는 유출구가 만들어져 바다로 직접 배수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출량이 적을 경우 바다에서 밀려온 모래에 의해 유출구가 막힌다. 석호로 유입하는 하천들의 퇴적물로 석호는 점점 매립되어 수심이 낮아지고 규모도 작아진다. 최근 습지가 생태계 중요 환경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석호가 습지로 분류되고 있다.
흔히들 해안선의 평탄 정도에 따라 동해안은 융기해안, 서해안은 침강해안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한반도처럼 좁은 지역에서 융기나 침강현상이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달리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신생대 제3기 중엽, 다시 말해 지금부터 2,000-3,000만년전부터 동해의 확장과 더불어 나타난 한반도의 융기가 서해안쪽에 비해 동해안쪽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신생대 제3기 중엽 이래 한반도는 지역적으로 융기량에 차이가 있을 뿐 계속해서 상승하였다. 참고로 신생대와 그 이전의 중생대는 공룡이 멸종한 시점을 경계로 구분한다. 신생대는 지금부터 약 6,000만년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를 말하며, 신생대는 기온이 상승했던 제3기와 기온이 급격히 하강했던 제4기로 구분한다.
신생대 제4기는 지금부터 200-300만년전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기온하강에 따른 빙하의 성장과 해수면의 하강이다. 즉 빙하기였던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기온 하강과 기온 상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빙기와 간빙기가 수차례 나타난다. 현재는 마지막 빙기 이후의 간빙기에 해당하는데, 마지막 빙기의 흔적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빙하가 사라진 10,000년 전을 기준으로 또 다시 그 이전을 플라이스토세(홍적세), 그 이후를 홀로세(충적세) 혹은 현세로 부른다. 한편 신생대 제4기는 빙하기라는 혹독한 기후환경에서 도구, 언어, 불 사용 등 문화라는 무기를 통해 다른 동물들을 구축하고 인간이 지구의 패권자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즉 인류의 시대였던 것이다. 최근 상영된 영화의 제목 10,000BC 역시 빙하로 고립되었던 인류 집단이 빙하의 후퇴로 서로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갈등이 영화의 모티브로 착안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해안선으로 돌아가 보자. 마지막 빙기 극상기인 25,000년 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50m 가량 낮았다고 한다. 현재 서해안의 최대 수심이 80m 내외라 서해안은 모두 육지였고, 황하, 양쯔 강, 한강, 압록강 등이 서해에서 서로 만나 큰 강을 이루면서 남중국해로 빠져나가는 대하천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동해 쪽은 최대 수심이 3,000m 가량 되고 경사도 급해 빙기에 육지로 드러나는 부분이 서해에 비해 넓지 않았을 것이다. 해수면 하강으로 확대된 육지는 그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된다. 따라서 서해안과 동해안 모두 마지막 빙기 이후의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된 침수해안인 것이다.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을 기준으로 보면 침수해안과 이수해안, 육지의 융기와 침강을 기준으로 보면 융기해안과 침강해안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침수해안과 침강해안 그리고 이수해안과 융기해안의 지형학적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한편 융기량에 비해 해수면 상승이 크면 침수해안, 적으면 융기해안이 되고, 침강량에 비해 해수면 하강이 더 크면 이수해안, 적으면 이수해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제3기 중엽 이래 한반도는 전체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융기해왔지만, 가장 최근의 해수면 변동만을 생각한다면 양쪽 해안 모두 침수해안인 것이다.
침수해안이지만 동해와 서해의 해안선은 다르다. 서해의 경우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고 태백산맥에서 분지한 차령산맥, 노령산맥과 같은 갈비뼈 산맥들이 서해까지 이어져 해수면 상승으로 내륙 깊숙이 침수되어 굴곡이 극심한 리아스 식 해안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동해안의 경우 하천의 경사가 급하고 해수면이 서해안과 같은 높이로 상승했다고 하더라도 내륙으로 침수되는 범위가 좁아 해안에는 소규모의 굴곡만이 남는다. 더군다나 이렇게 형성된 만입지 대부분이 만구사주로 막혀 석호가 형성된 덕분에 동해안의 해안선은 더욱 단조로워진 것이다. 따라서 외형상 동해안을 융기해안으로 볼 수 있으나 석호가 존재하므로, 최근의 해수면 변동만 생각하면 서해안과 마찬가지로 침수해안이다.

Skin Technical Note
Sites validated CSS, XHTML & IE6, IE7, FireFox, Opera and Safari Accessiable. Generator & Powered by Zeroboard XE. This site inspired by Slabovia and developed by WTA




최근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