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일반산행기 -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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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두번째 주 토요일, 놀토에 서울에 올라온 김에 북한산을 가기로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는 인수봉을 아래에서 뒤로 돌아 백운대로 올라가는 숨은벽 코스다. 그러나 오랜만에 취해보는 늦잠 때문에 코스를 바꾼다. 집 부근 비봉코스, 11시쯤에사 출발한다.
집앞(자하문터널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승가사입구 정류장에서 내린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구기동코스가 시작된다. 입구에는 이런 안내소가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입구로써 전에는 입장료를 받았다. 일인당 1,000원만 해도 그 입장료 수입이 엄청났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전국의 국립공원 입장료를 없앴다. 복지정책의 일환이었을까. 참으로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원래 자리잡고 있던 산을 국립공원이라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는 국민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것은 세금 거둬 살림살이하는 국가로써 말이 안된다고 항상 생각했었다.
입구의 이정표를 보고 코스를 정한다. 아내의 무릎 상태에 따라서 코스는 달라질 것이지만, 대강 구기동-비봉-사모바위-문수암-대남문-구기동으로 잡아본다. 4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김밥도 세줄이나 준비했다. 자신만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물이 거의 마른 북한산 계곡에 누리장 나무가 열매를 맺고 있다.
산 아래에서 자주 보이는 이 흰꽃. 산 아래 동네에 많다. 우리집 뒤뜰에도 이 꽃이 어느 순간부터 많이 피었다. 흰꽃이긴 하지만 좀 천박스럽다. 서양등골나물이다. 최근에 귀화한 식물로 우리의 식물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등골나물은 자주색을 연하게 띠고 있으며 제법 높은 산자락에 자란다. 이건 우리의 등골나물과는 전혀 다른 종류처럼 보인다. 생김이 비슷하여 붙인 이름일까? 한참을 올라가면 문수봉 즉 대남문과 비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일찍 올라온 사람들은 벌써 산을 내려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곧 내려가 아랫동네 막걸리와 파전과 .....
완전히 마르지 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다. 북한산의 계곡물은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화강암 바위와 맑은 물이 어울리는데,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일급수에서 사는 버들치다. 제법 큰 놈도 있다.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는 맛있다. 회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국립공원 안의 물고기는 못잡아먹는다. 입맛을 다시며 올라간다.
노란 꽃이 왕창 피었다. 이고들빼기꽃이다. 10월 초순의 북한산을 뒤덮고 있는 대표적인 꽃이다. 고들빼기 앞에 '이'자가 붙었다. 너를 뜻하는 이(爾)자다. 너도 고들빼기에 넣어준다는 뜻이리라.
산부추도 보인다. 꽃대궁 하나 불쑥 올라와 그 끝에 수많은 꽃들을 사방으로 매달았다. 노란색의 수술들이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냥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꽃들도 이렇게 자세히 보면 정감이 생긴다. 모르고 지나가면 나와 아무 상관없는 존재도 이름을 알고 언제 어디서 자라 꽃을 피는지를 알고 찾아가게 되면 그리움마저 생긴다. 꽃만 그럴까? 표선와서 처음 만난 학생들이 난잡해서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 옷도 마음대로 입고 말도 상스럽고 공부는 아예 담쌓은 아이들이었다. 수업은 그야말로 봉숭아 학당이었다. 무단 결석, 지각, 조퇴가 흔했다. 꼭 들풀같은 아이들이랄까. 점점 그들의 환경을 알고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약속을 만든다. 다음에는 잘하기로. 아이들의 습성도 익혀나간다. 집안 형편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들과 조금 좋은 사이가 되어갔다. 모르게 지나가는 수많은 꽃에서 이름을 알고 생김을 알고 어디서 자라서 언제 꽃을 피우는지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둥글레 꽃은 잎 아래에 피는데, 그렇다면 둥들레 열매도 잎 아래에 생겨야 할텐데... 이 놈은 잎 위에 열매 하나 달랑 달고 있다. 그렇다면 둥글레가 아니란 말인데. 애기나리일까? 잎은 벌레에게 깍아 먹혀도 얼매 하나는 튼실하게 맺었다. 한해 농사를 성공시켰다. 고생했다.
별로 높지 않은 곳에서는 향유가 꽃을 피우고 있고, 곤충들이 꿀을 빨아먹고 있다. 수정하는 줄도 모르고.
향유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선 배초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꽃향유와는 모습과 꽃색깔이 다르다. 그래서 배초향으로 일단 정리해 본다. 향기와 꿀이 풍부할 것 같다. 벌레들도 꼬인다. 꽃모습은 난숙하고 익을대로 익은 그리고 조금은 색기가 흐르는 30대후반, 40대초반의 여인같다.
휴일의 북한산에는 사람이 많다. 어딜 가도, 어딜 보아도 사람들이 보인다. 북한산이 서울 지근거리에 있음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다.
승가사 입구에 도달했다. 태권도 강사가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나보다. 7살쯤 되는 애들이 신나게 논다. 가방을 휘두르면서 전쟁놀이에 여념이 없다. 죽이고 싶은 7살 때다. 시끄러워도 참는다. 저 때는 저렇게 뛰어다니면서 커야 하는 때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밤 두줄을 꺼내 먹는다. 세줄 중에 두줄을 먹어버렸다. 비봉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간다. 등짝에 땀이 촉촉해질 때 쯤 능선에 도달한다.
쑥부쟁이가 우릴 반긴다. 이쁘다. 먼저 핀 놈은 지고 있다. 그래도 남은 꽃잎으로 자신의 전성을 드러내고 있다. 저 꽃잎의 색이 또 나를 감동시킨다. 그래도 쑥부쟁이는 귀티가 느껴지지 않다. 그냥 참한 시골 아낙네 같다. 반면 구절초는 아무데서나 귀티가 난다. 나의 주관이 그렇게 만들고 있을 게다.
서울산은 대부분 화강암 산이다. 화강암이 풍화되어 흙이 되면 마사토같은 흙이 되나보다. 산능선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먼지가 인다. 안내판의 사진과 글을 보고 봉우리 이름들을 익힌다.
10월 초순의 북한산은 이고들빼기가 점령하고 있다고 아까 말했다.
아랫쪽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던 구절초가 산 위에서는 피었다. 봐라 귀티가 나는지 안나는지. 한없이 청순하고 맑고 고귀해 보인다.
비봉 아래에 도달했다. 오래전부터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어 어느 순간부터 비봉이라 불렸다. 안내글은 잘 안보인다.
6세기 후반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세운 북한산진흥왕 순수비다. 560년대 진흥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순수비를 곳곳에 세웠다. 창녕순수비, 북한산순수비, 황초령순수비, 마운령순수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비석은 오랫동안 정체를 몰랐다. 조선후기 실사구시 고증학을 발전시킨 추사 김정희가 1816년 이곳에 올라와 비문을 보고 면밀히 고증하여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냈다. 진흥왕이 555년에 한강유역을 장악하고 그것을 돌아본것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것이다. 비의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창녕순수비를 세운 561년과 황초령비를 세운 568년 사이쯤인 것으로 추정한다. 1972년에 비의 보호를 위하여 경복궁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한동안 옮긴 후 비봉에는 그냥 원비석 비슷한 걸 올려놓았는데, 지금은 복제품을 제작하여 세워놓았다. 국보제3이다.(참고로 국보2호는 경천사10층석탑이다. 제4호는 고달사지부도, 제5호는 법주사 쌍사자석등이다.)
비봉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비봉에서 남쪽으로 북한산 능선과 그것과 갈라져서 생긴 두 봉우리, 왼쪽의 북악산과 오른쪽의 인왕산이 보인다. 그 너머 가물가물 서울의 남산인 목멱산도 보인다. (사진에선 안보이지만) 그 가운데가 바로 진짜 서울이다.
비봉 가장 높은 곳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바위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여름엔 이 틈이 최고의 자리가 된다. 아래 능선 일부가 액자처럼 보인다. 바위가 만드는 곡선이 제법 재밋다. 무슨 가오리연 같다.
이건 오른쪽으로 즉 동쪽으로 보이는 보현봉. 지금은 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휴식년제 기간이 끝났는데도, 한번 더 연장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보현봉 올라가는 방법은 딱 한가지. 앞선 사람이 하라는 대로 따라해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박힌 돌이 하나 있었는데, 꼭 그것을 잡고서야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돌을 잡고 올라가던 사람이 그 돌이 빠지는 바람에 떨어져서 크게 부상을 입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젠 보현봉을 어떻게 올라갈까? 휴식년제가 끝나면 저 봉우리를 꼭 올라가고 싶은데.... 결혼전 연애시절 아내와 난 우리 결혼식을 주례해주신 선생님의 안내로 이 북한산을 많이 올라었다. 보현봉도 그 선생님의 안내로 자주 올라갔던 곳이다. "오른손으로 그 박힌 돌을 잡고 왼쪽 뒷발로 탁 차서 그 반동을 이용해야만 올라갈 수 있어. 내가 시범을 보일테니 그대로 따라해야 돼" 그렇게 올랐던 보현봉이다. 다른 사람이 절대 도와 줄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높은 바위에 올라갈 땐 내가 뒤에서 엉덩이를 받쳐주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한 스킨십으로 우린 더 가까워졌고, 그런 정분이 쌓여 결혼했으니, 보현봉은 우리에겐 소중한 봉우리인 셈이다. 보현봉 맞은 편엔 문수봉이 있다.
비봉에서는 사모바위가 저렇게 잘 보인다. 곳곳에 사람들이 스며들어 있다.
저 멀리 해발 836m인 백운대가 보인다. 백운대 오른쪽엔 노적봉도 보인다. 백운대 오른쪽에 덧니처럼 봉우리 하나가 보이는데 그게 인수봉이다. 이 세 봉우리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북한산의 원래 이름이 삼각산이 되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김상헌의 시조였던가? 서울을 떠나 만주족에게 인질로 잡혀가면서 했단 말이다. 800m가 넘는 봉우리들이다. 백운, 인수, 노적, 보현, 문수 이들 모두 불교 용어다. 조선을 개창한 신진사대부들의 종교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불교였던 것이다.
비봉 아래에 코뿔소 바위가 허공에 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코에 올라탔다. 코뿔소를 조종하며 어디 좋은 세상으로 떠나가는 모습 아닌가요? 오른쪽 보현봉, 왼쪽 문수봉 그 가운데 가까운 곳에 나, 참 잘도 어울린다. 바위에 걸터앉아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은 절대 아니다. 진짜다. 사실 그렇게 무섭진 않았답니다. 이것도 진짜다.
코뿔소 바위 위에는 이런 웅덩이가 있다. 바닷가 바위의 모습이다. 아마 엄청난 과거에 이 바위는 바다에 있었나 보다. 바닷물이 들락거리자 바위의 약한 곳이 쓸려나가 조그만 웅덩이가 되었다. 그게 1년에 1cm씩 혹은 그보다 더 작게 융기하며 수백만년이 지났고, 지금은 이렇게 북한산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세월이란 참!!!
사모바위에 도달하자 무시무시한 안내판이 눈에 띈다. 3년전엔 없었는데. 현정권 들어서서 반공자료로 설치한 것인가 보다. 현정권 들어서서 서울시내 광화문 거리엔 6.25전쟁 사진 전시회가 상시 전시되었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1968년 1월, 북한의 특수무장공작대-124부대였던가-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해왔다. 이 사모바위 아래 동굴에서 은거하면서 최종 작전을 점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1월 21일 창의문을 거쳐 북악산을 올라 청화대를 습격했다. 군경의 공격을 받고 27명은 사살당하고, 1명은 생포, 3명은 도주한 사건이다. 이후에 남한에는 반공정책이 강화되어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학생군사훈련이 등장했다. 김일성 주석궁을 습격하기 위한 특수부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그들이 일으킨 사건이 실미도 사건이었다.
사모바위는 사모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평상복 중에 모자에 해당하는 게 사모(紗帽)인데 바위가 그것처럼 생겼는지 한번 쳐다보자. 모자 뒤에 붙이는 날개가 없어서 그렇지 몸통은 정말 사모처럼 생겼다.
사모바위 쪽에서 내려가는 길, 능선을 따라 더 올라가는 길 등 여러갈래고 갈린다. 다시 구기동으로 내려가려면 왔던 길로 되돌아 가는 길과 대남문으로 올라가는 길 밖에 없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갈 수는 없는 법. 대남문길을 택한다. 대남문까지 1.6km 란다.
사모바위를 지나 한참을 올라가니 참으로 재미있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사모바위, 비봉 그리고 또 다른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다.
발그스레한 구절초꽃. 그냥 하햔 색만이 아니라 처음 꽃필땐 저렇게 발그스레하다. 처녀구절초쯤 된다. 가을의 최고의 꽃은 저 구절초라 난 생각한다. 길가다 만나는 꽃들 때문에 산행은 더 신바람난다.
문수봉 올라가는 길 능선에 석문이 하나 있어 운치를 더한다. 석문이 만드는 액자효과가 저 너머 경치를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 아직 단풍철은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여름의 녹음이 짙은 것도 아니고 여름과 가을 단풍 중간의 어정쩡한 시기의 북한산 모습을 보인다. 이제 2주일만 지나면 노랗고 빨간 단풍들로 뒤덮힐 것이다. 그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통과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
문수봉 올라가는 길과 그 뒤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우리는 뒤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나중에사 알았지만 그 길이라고 결코 수월한 길이 아니었다. 이 길에서 정령엉겅퀴를 만난다. 흰색이 대부분인데 이놈은 빨간색이 감돈다. 검은 색의 술이 특이하다.
남쪽이 막힌 산 뒤쪽의 단풍나무는 단풍이 들었다. 높기도 하고 음지이기도 하기에 일찍 단풍이 든 것이리라. 올해 처음 만나는 단풍이다.
아내는 또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짧게 가볍게 산행하자고 해놓고 또 이렇게 멀리 오고야 말았다고. 또 다리가 아파온다고. 불만과 투정과 불평이 터녀나온다. 이때는 그냥 가만히 듣기만 해야 한다. 핑게를 대거나 합의했지 않았냐? 라고 따지거나 말하면 그 반박이 두 세배가 되어 되돌아 온다. '그러게 말이야, 오다 보니 또 그렇게 되고 말았네' 이 정도로 얼버무리는 게 최상이다. 녹초가 다 되어갈 때 쯤 청수동 암문이 나타난다. 산성의 비밀통로를 암문(暗門)이라 한다. 숙종때 북한산성을 정비하면서 만든 암문이리라.
암문 앞에는 참취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왜 문앞에 참취꽃이 많이 피었을까? 사람들이 봄에 뜯어 먹지도 않았나 보다.
암문을 돌아 대남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처녀치마 군락지이다. 작년 봄에 처녀치마 구경하러 무작정 이 코스로 왔다가 한 송이도 보지 못하고 허탈해하며 이 곳을 지나가고 있을 때, 나타난 처녀치마 떼들. 감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만 아는지 다른 사람도 아는진 몰라도 이곳이 처녀치마 군락지임을 안다. 내년 봄에 연보라빛 처녀치마꽃을 피우겠지. 겨울을 견디려고 꽃망울이 단단히 채비를 갖췄다.
좀 아깝지만 처녀치마 한번 보여준다. 그것도 들춰서.
높은 곳이라서 그런지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다. 역시 높고 약간은 음지진 곳이라 단풍이 너무나 빨갛게 물들었다. 푸르던 놈이 왜 가을이 되면 저렇게 철저히 초록의 보색인 빨강으로 물들까? 이유가 뭘까? 빨간 예쁜 단풍을 보며 이런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 이쁘다. 좋다. 라고 여길 뿐이다.
대남문의 문루가 보인다. 북한산성의 남문인 셈이다. 구기동에서 옆으로 새지 않고 똑바로 올라오면 나타나는 문이다. 올라오면 오른쪽엔 보현봉이, 왼쪽에 문수암이 있다. 그 사이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이 문이다.
산국이 절정에 달했다. 저 산국 말려서 차로 마시면 그 향기가 코끝에 감도는게 끝내주는데.....뭉쳐 핀 산국이 한마디로 ' 이젠 진짜 가을이구나!'라고 대변하고 있다.
숙종은 청나라 몰래 북한산성을 거의 새로 짓다시피 개축했다. 1720년대였다.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산성의 흔적은 이때 조성한 것이다. 백운대가 있는 쪽은 산이 험하니 그것을 그대로 활용했고, 나머지는 높은 봉우리들을 연결하는 성을 쌓았다. 적당한 지역에 문도 만들었고, 비밀통로인 암문도 여러개 만들었다. 성내 군사요지엔 군대지휘소인 장대를 세웠다. 가운데 안정된 지역에 임금의 임시 거처인 행궁도 지었다. 영조가 행궁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들락거린 문이 암문이었기 때문에 그 암문을 확장했으니 그게 대성문이 되었다. 삼국시대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북한산성이 조선시대 이렇게 다시 탄생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북한지에 잘 실려 있다.
대남문 정경이다. 구기동에서 이 대남문까지는 길을 잘 정돈 해놓았다. 특히 대남문 가까이 와서는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하면 산길을 훼손하지 않도록 치장했다. 사람도 하나의 자연일진대 사람대접이 해도 너무하다. 그래도 어쩔텐가. 사람 발이 닿기만 하면 망가지는게 자연인데.
내려오는 길 좌우에 배초향이 즐비하다. 향기가 막 터져나오는 듯하다. 보라색이 휘황하다.
자세히 보고 있노라니, 이상한 벌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도 아닌듯 한 곤충이 배초향의 꿀을 빨아먹고 있다. 벌샌가? 우리나라에도 벌새가 있단 말을 듣지 못했는데, 하는 꼴이 꼭 벌새같다. 꽃에 앉지 않고 날개짓으로 허공에 떠서 긴 침을 꽃에 있는 꿀샘에 박아넣어 꿀을 빨아먹고 있다. 벌새 아니라도 벌새처럼 살아가는 놈이 있긴 있나 보다.
이젠 터벅터벅 내려간다. 아내의 투정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다음에는 따라가나 봐라. 꼭 2시간 정도만 걷자고 해놓고 5시간 이상을 걷게 만들고 말아. 이번에도 또 속고 말았네. 다음에는 절대 속지 않을 거야. 뭐 이런 투다. 산박하의 파르스름한 색만 보아도 저런 불평들이 사라지고 말텐데 불평은 끊임이 없다. 산 내려가면서 뭐 특별히 다른 할 일도 없다. 불평도 재미다.
흘깃 쳐다 본 문수봉이 깔끔하다. 제주의 산과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제주에는 저런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은 결코 없다.
다 내려왔다. 눈괘불주머니가 다 내려왔다고 알려주었다. 봄에 주로 피는 산괘불주머니와 비슷하지만 이놈은 왜 가을에 꽃을 피우는지 모른다. 선괘불주머니라고 이름붙여진 것도 있던데 어느 것이 맞는지 난 모른다.
다 내려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물도 다 마셔버렸다. 목이 마른대도 참았다.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서였다. 등산길이 시작되는 곳은 사하촌 비슷하게 산하촌이 형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산유화라는 집의 파전이 맛있다. 어라. 생맥주도 있다. 파전과 생맥주 어울리지 않지만 함께 시킨다. 맥주 나올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 목마르다고 물을 마셔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맥주맛이 반감한다. 참아야 한다. 생맥주 맛이 제법이다. 산중에 배달된 생맥주가 맛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다. 아마도 금방 개봉한 맥주였나 보다. 안주가 남았다. 이번에는 막걸리를 시킨다. 맥주의 효용가치가 끝났기 때문이다. 배가 불렀다. 집에 와서 저녁을 거르고 옆집에 있는 처남내외와 아들 두놈과 아내와 이렇게 여섯이서 제주에서 냉동해서 가져온 한치를 살짝 대쳐서 안주삼고 맥주와 양주를 섞어 폭탄을 만들어 마셨다. 아뿔사 아들놈 용돈 올려주기로 덜컥 말해버리고 말았다. 12시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온갖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 소통이 폭발하고 말았다. 북한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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