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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8일

드디어 출국 날이다.
아침 8시 50분 비행기라 7시 좀 전에 공항에 도착해 ticketing을 하기위해 줄을 섰다
10분 쯤 뒤에 Mr.Kim과 Mr.Lee가 나타났다.(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Mr.Kim은 서바스 코리아 회장이라는 것, 다대포에 사신다는 것 그리고 Mr.Lee는 대구에 사신다는 것 외엔. 나중에 Mr.Lee에게 양해를 구했었다. ' Mr.Lee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가 좋다고 했다.)

마중나온 남편과 아쉽게 작별할 시간이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며 자꾸만 뒤돌아보자 어린아이같이 왜 그러냐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김해 출발 5 시간 조금 지나 방콕에 도착했다.
인도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는 6 시간 쯤 공항에 머물러야했다.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
할 일 없이 면세점도 구경하고 공항도 이리저리 둘러보다 배가 고파 'The Miracle'이라는 타이 전통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무엇을 먹을까 메뉴판을 열심히 보며 망설이고 있다 웨이터를 불러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 중 제일 비싼 것을 권했다.
밖에 나가서는 돈 아끼지 말라는 남편 말씀이 떠올라 선뜻 그것을 시켰다
요리 이름은 spicy and sour soup with prawn 이었다.  
태국 요리 특유의 향신료 맛이 듬뿍나는 국물에 새우 몇 점, 붉고 매운 고추 조각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약재 같은 것들이 진한 육수 속에 들어 있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게 먹었다.

3년 전 딸과 프랑스 여행을 갈 때 들렀던 공항 모습이 아니라 웨이터에게 물었다.
' 이 공항 돈무앙 공항 아니죠?'
신공항 Suvarna Bhumi 라고 적어 주었다. 그때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 딸과 같이 일정을 의논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 coffee 집이 어쩐지 보이지 않았다. 
신공항은 규모가 어마어마 하게 크고 구조도 특이하고 멋있었다.
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여러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멀건 육수 국물에 새우 몇 점 든 스프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근처 커피 전문점에서 에스프레소 small이랑 머핀을  170bt  주고 시켰다. 물도 하나 샀다.

하릴없이 쏘다녔지만 닫혀진 공간 속의 6시간의 공백은 길게만 느껴졌다.
C9 Gate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웬 한국 청년이 곁에 다가와
인도는 처음이라며 이것 저것 물어본다.
비즈니스차 인도에 가는데 오페라하우스가 어디냐며 그 주위에 있는 호텔에 머물러야한다는 것이다. 꼴라바는 잘 아는데 오페라하우스는 잘 모른다고 하며 배낭여행 책자 ‘인도 백배 즐기기’를 보여주었다.
하룻밤 자는데 400-500루피( 1루피는 약 30원)라고 쓰여 있자,
자기는 하룻밤 100달러로 알고 왔다고 한다.
그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여기는 사진 찍기에 배경이 적당치 않다고 한다.
게이트 앞 구석진 곳 처량하게 앉아 있는 나를 찍으라고 했다.

탑승이 시작되자 갑자기 그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먼저 일어난다.
나중에 탑승할 때 보니 비즈니스석에서 나를 보고 미소짓고 있었다.
순간 앗! 이것 저것 괜한 정보를 주었다는 낭패감들이 들었다.
내 정보는 배낭 여행자를 위한 것인데...


탑승하는 사람,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 주위가 전부 인도인이다.
여자와 아이들도 보이지만 거의가 비즈니스차 외국을 다니는 인도 남자들로 보인다.
이륙 전 비행기 속, 인도 음악일까? 아니 타이 음악일 것같다.

왜인지 슬펐다. 옆에 앉은 인도 여자가 우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멈추려 해도 멈추지 않는다.
손수건을 꺼내 닦고 또 닦으며,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눈물이 손수건 한 장을 푹 적셨다.
비로소 혼자 된 감격의 눈물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스스로 통제의 벽을 허물고 하염없이 흐른다.
파란만장 했던 25년 결혼 생활 동안 인내하며 성실하게 보낸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의 흐느낌일까?

무엇보다 일주일 간 온 몸과 가슴을 송두리째 흔들고 지나간 것은,
슬쩍 던진 말을 무심코 흘려 지나칠 수도 있었다, 가고싶다고 말은 했지만  혼자서 떠난다는 게 사치스런 생각이고, 행복한 상상으로만 그칠 것이라 주저주저 하고 있었는데, 앞서서 적극적으로 문을 활짝 열어준 그에 대한 고마움이 눈물로 표현된 것이리라. 


남편과 떨어져 있는 반나절 동안은 무척 당황스럽고 나에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사실, 집에서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곤 거의 남편과 같이 한다.
운동도 같이 다니고 시장도 같이 가며, 등산도 같이 다니고 영화도 같이 보러 간다.
이런 우리를 보고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젊은 새댁은 자기 부부가  앞으로 닮고 싶은 모델이라 하고, 할인점의 아낙들( 떡집 아줌마, 견과류 파는 아줌마, 인삼등 약재류를 파는 아줌마 등)은 두 분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며 가끔씩 덤을 듬뿍 주기도 한다. 운동을 가면, 나란히 같이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 둘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고들 한다.
그들에게 비쳐진 우리의 모습인가 보다.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던가?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환상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들, 특히 아버지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집은 없을 거라 한다.  최근들어 가끔씩 남자 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딸아이에게 결혼 상대로 남자를 찾을 때 무엇을 제일 우선 순위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엄마, 우리 집처럼 따뜻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남편이 결혼 후 지금껏 애써 가꾸며 일군 현재의 우리 집 모습이다.
다른 집은 엄마가 집을 비우면 힘든다고 하는데,
아마 우리 집은 남편이 집을 비우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룡씨!'하고 부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
My husband can do anything for me.
아이들은 '아빠!'라고만 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남편은 나를 포함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남편의 이런 과잉보호로 지금껏 나는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하고 15년 전에 딴 운전 면허도 지갑 속에 썩히고 있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대신 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기껏해야 메일 보내기와 인터넷 정보 탐색 정도다.)  혼자 외출하고 돌아오면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지만 역으로 마중 나와 집까지 편안하게 모셔다 주고, 한 달에 한 번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올라갔다 내려올 때도 부산 도착 시간이 새벽 세 시가 되든 네 시가 되든 노포동 터미널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  올리브가 위험에 처할 때 뽀빠이를 외치듯,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저 '성룡씨!'라고 부르면 된다.

남편은 가끔 이런 나를 보고 집에만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른다고 하고
또 철이 없다고도 한다.
그렇다. 나는 아직 철이 없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래서 겁 없이 무엇이든 하려든다.
아무에게나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넨다.
철이 없어 그들도 남편처럼 나를 잘 이해해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인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처신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러한 처신 또한 별 알고 싶지 않다. 도리니, 상식이니 하는 잣대로 스스로를 속박하고 자유롭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실, 나야말로 엄청 피곤하게 살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모범'이라는 틀에 꼬옥 들어맞는...


이렇듯 결혼 후 오랫동안 남편의 과잉보호 속에서 살아온 내가 남편 없이 혼자 15일간의 여행을 떠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향한 도전이자 크나큰 모험이다.


옆에 앉은 인도 여자가 담요를 덮고도 춥다며 내게 말을 건네 온다.
내 담요를 그녀에게 덮어주고 나는 가방에서 저번에 인도에 갔을 때 델리의 찬드니촉 마켓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덮고 다녔던 빨간 색 숄을 꺼내 덮었다. 그녀가 고맙다고 하며 혼자냐고 묻는다.  그래서 외로워서 울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답했다.


현지 시각 9시 30분 뭄바이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나서 뱅갈로르 행 표를 갖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인도 아저씨를 만났다. 일인당 76달러를 지불했다. 우리는 29일 새벽 1시 30분 뱅갈로르 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또 다시 뭄바이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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