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이야기 - BC Talk
비자야와 그녀의 가족
5월 1일
아침 일찍 일어나 3일간의 여행을 위한 간단한 짐을 챙겨 서둘러 K.S.T.D.C.쪽으로 갔다. 버스 NO.9141, 같이 여행하는 사람 16명 거기다 운전 기사, 보조, 가이드까지 모두 19명이었다.
오전 9시경 아침을 먹기 위해 길 위의 허름한 레스토랑 앞에 차가 멈췄다.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고, 식권을 끊어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아둥대는 그들 모습만 지켜볼 뿐,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버스에서 우리 바로 뒷좌석에 앉아 가족 4명이 투어 중인 인도 아줌마가 슬며시 내게 다가왔다. vada(바다)와 idly(이들리)라는 음식을 추천해주곤 내 대신 식권을 끊어 주었다. 식권을 받아들고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려했지만 그들은 줄은 서지 않고 식권을 쥔 손을 높이 들고는 먼저 음식을 받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가이드가 정해준 식사 시간은 끝나가는데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들만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다 아침을 굶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가이드 아저씨(그의 이름은 Nagraju)가 왔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나에게서 식권을 받아들곤 곧장 조리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세 사람 분의 식사를 직접 챙겨 나왔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인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도 이런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니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아침을 먹고 처음 들린 곳은 옛날 Sultan의 Summer Palace라고 한다.(입장료 100루피)
저번 인도 여행에서 아그라의 Red Fort, Taj Mahal, 아우랑가바드의 아잔타 석굴, 엘료라 동굴 등 큼직큼직하고 인도를 대표할만한 유적들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이곳은 썩 그렇게 나의 흥미를 당기질 못했다.
점심을 먹고 Mysore Palace를 구경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입구에 있는 사진기 보관소에 카메라를 맡겨야 했다.
사진만 찍지 않으면 맡기지 않아도 괜찮겠지 하고 그냥 소지하고 들어가려다 궁전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체크하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
입구 쪽으로 뜨거운 태양을 안고 땀 흘리며 걸어갔다 다시 돌아와 궁전 내부를 보아야 할 만큼 필연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한적한 회랑에 앉아 쉬고 있었다.
멀리서 인도 청년 네 명이 가던 길을 돌아서 회랑 안 반 쯤 숨어 있는 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니, 이름이 뭐니, 직업이 뭐니 등.
그들은 곧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보니 네 명이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외국인에 대한 그들의 관심 표명은 대단했다.
조금 전 어느 시장 통을 지날 때 한 아줌마가 다가와 자기 딸이 나와 꼭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며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또 어떤 처녀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며 쾌활하게 말을 붙이고는 그녀의 친구, 가족들 모두 불러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들 눈에 비친 나는 생소하고 신비한 존재였나 보다.
아무튼 그들이 보여준 관심이 고마웠다. 그때 나는 무척 외로웠기 때문.
3 days 투어 중 뒷좌석에 앉은 뱅갈로르에 산다는 친절한 가족을 만났다.
아침에 레스토랑에서 쩔쩔매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식권을 끊어준 사람이다.
그녀의 이름은 비자야(Vijaya) 나중에 라메시에게서 들었다.
힌디어 Vijaya는 영어로 Victory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녀의 큰 아들 이름은 마유르(Mayur)라고 한다.
그녀는 입장료 티켓을 끊을 때 카메라 촬영을 할 것인지 일일이 내게 물어 티켓도 대신 끊어 주고 (인도에서는 공원에 입장할 때에도 입장료 외에 카메라 촬영료를 별도로 받고 있었다. 카메라 촬영료를 내지 않고 입장했다가 사진을 찍을 경우엔 많은 벌금을 내어야 한단다. 그러나 내가 오늘 댐이 있는 어느 공원엔가 갔을 때는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촬영료를 내지 않고 입장했었는데 그 사실을 깜빡 잊고 그냥 열심히 사진을 찍었었다. 하지만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았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와 이런저런 어드바이스를 해준다. 관광버스가 데려다 준 마이소르 실크 가게에서는, 이곳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차라리 바깥의 다른 가게에서 사는 게 낫다고 슬쩍 귀띔해 주었다. 카메라와 가방을 조심하라고 수시로 나에게 긴장을 일깨워 준다.
남편은 UTI bank manager라 하며 명함 한 장을 주었다.
그는 별로 말이 없었고 가족들에게 따뜻한 눈길만 보내고 있었다.
그 집 큰 아들은 10th grade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 1 학년), 둘째 아들은 5th grade라 한다.
마유르는 나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서로 사진을 보내 주기로 했다.
인도는 일 년에 방학이 딱 한 번, 두 달간 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 한다.
그래서 가족 네 명이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자야는 사진 찍기 적절한 곳에서 아들을 시켜 사진 찍기를 권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다.
3일 간의 여행 동안 나는 그녀의 가족들과 거의 같이 다니다시피 했다.
분수 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7시 15분까지 버스로 돌아가야 하므로 7시에 시작하는 분수 쇼를 5분 정도만 구경하기로 하고 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끊임없이 인파가 몰려든다.
저 쇼가 도대체 얼마나 재밌는 걸까?
무대 뒤편의 수풀 위로 이국에서의 달이 떠올랐다.
첫 날 밤은 마이소르의 Hotel Abishek에서 묶었다.
내일 새벽 4시 30분 모닝콜, 5시 30분 출발 예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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