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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새벽 4시 30분 모닝콜이 울렸다.
그러나 갑자기 정전이다.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남편이 오기 전 챙겨준 손전등은 뱅갈로르의 라메시 집 큰 짐 가방 속에 두고 가져오지 않았다.

준비하고 짐을 챙겨 나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도 바쁘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혼자 내던져져 있다는 그 자체가 공포였다.
눈을 떠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아 방문을 열었다가, 혹시나 나쁜 사람이 들어닥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다시 문을 닫았다가, 패닉 상태가 되어 혼자서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모른다.
여기서는 ‘성룡씨!’를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답답해서 울음이 나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불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어젯밤의 기억을 더듬어 두 팔로 복도 벽을 더듬으며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로비를 향해 걸어갔다.
바닥은 물로 질퍽거리고 있는 듯했다. 어디에서 누수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멀리서 희미한 후라쉬 불빛이 비치길래,

"Excuse me, do you have any candles?",
"Please help me!" ,
"Can you lend me your flashlight?” 등의 말을 외쳤다. 

어두운 발코니에 서서 외치고 있는 낯선 이방인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가끔씩 그들의 후라쉬 불빛을 내 쪽으로 비춰줄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한참을 침묵으로 기다렸더니 30분쯤 흘렀을까
누군가가 조그마한 양초를 여러 개 구해왔다. 그 중 하나에 불을 붙여 나에게 건네준다.

나중에 Mr.Lee 말로는 밤새 천둥 치고 비가 몹시 내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몇 번의 천둥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 것 같다.


정전 탓인가 예정보다 좀 늦은 시각 버스는 출발했다.
밤새 내린 비 덕분에 거리는 한층 깨끗해졌고 공기는 상쾌하다.
교통사고다. 그렇지. 어쩐지 사고 없이 잘 다니더라니.
인도인들의 운전 습관은 너무 거칠다. 거리는 항상 경적 소리로 정신없이 소란스럽고, 양보라곤 모르는 그들의 차를 탈 때면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라메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날 공항에 픽업 나와 그의 집으로 향할 때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으-억 하고 놀란 소리를 냈었다. 그런 나를 향해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냐며 익살스럽게 물었다.

sunrise를 뒤로 하며 버스는 끝없는 평원을 가로지르며 씽씽 달린다.


힌두 사원에 도착했다.
간밤에 비가 내려 축축한 땅 위로 사람들이 드러누워 몸을 옆으로 굴리며 사원 주위를 돌고 있었다.
온몸을 던지며 기원하는 그들의 기도 내용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며 저절로 숙연해졌다.

사원 내부로는 들어가지 않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사실은 신을 벗고 맨발로 젖은 땅을 밟기 싫어서였다. 주변에는 과일 파는 사람들, 꽃 목걸이 파는 사람, 거지들, 짜이 파는 사람, 짜이로 시작되는 인도인의 하루..., 4루피 주고 한 잔 마셨다.( 짜이는 살균되지 않는 생우유에 홍차와 설탕을 넣고 홍차 맛과 빛깔이 우러나오도록 오랫동안 끓인 뒤 기호에 따라 생강 등을 첨가하여 먹는 인도인들의 기호 식품, 나씸이 부산에 왔을 때 몇 번인가 끓여준 적이 있는데. 자기 나라에서 먹는 짜이 맛과 똑 같다며 고마워 했다.)

차 쪽으로 움직이는데 철망 안의 한 소녀가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사원은 입구 쪽을 제외하고는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웬일인가 다가갔다. "Madam, 100 rupees please."한다. 말 없이 돌아섰다. 그녀의 큰 눈동자 속 검은 눈빛이 왠지 맘에 걸렸다. 차로 돌아와 뒷좌석에 앉아 있는 마유르에게 사원의 이름을 적어 달라고 했다.
Nanjundelhwaha Temple.


버스는 마이소르를 떠나 웃티로 향했다.
뱅갈로르에서 마이소르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마이소르에서 웃티까지도 세 시간 거리라 한다.
웃티는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20도에서 23도 되는 시원한 곳으로 인도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름 피서지라 한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사슴, 코끼리, 소, 원숭이, 공작 등 여러 종의 동물들이 자연 상태에서 노닐고 있는 국립공원 같은 곳을 지났다. 그리고 깊은 산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웃티로 들어가는 입구 어느 찻집에 내려 짜이를 마셨다. 길에는 동네 아낙들이 그들이 직접 재배한 당근을 팔고 있었다.
비자야가 당근을 한 묶음 사서 나에게도 하나 건넨다.
크기는 우리 것보다 잘았고 밭에서 갓 캐온 것인지 신선하고 우리 당근보다 수분이 많아 시원하고 맛있었다.

웃티에 도착하니 Otty Lake라는 꽤 넒은 호수가 보였고 사람들이 호수 위에서 배를 타고 있었다.
배를 탈 사람들은 배를 타고 타지 않을 사람은 가이드가 소개해 주는 슈퍼를 구경한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무엇을 시킬까 망설이고 있는데 마유르가 와서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메뉴판의 South Indian Meals는 No Chapatty Vegetarian Meals라고 한다.(짜파티는 동그란 모양의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것)

오후에는 Sim's Park, Botanical Garden 공원 두 곳을 돌아보고 Hotel Mayura Sudarshan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게 되었다.

숙소 옆에 인터넷 카페가 있었다.
남편으로부터의 소식이 궁금해 메일을 열어 보았지만 새 편지는 없었다. 무척 슬펐다.
머언 이국에서 열어보는 남편으로부터의 메일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오아시스와 같을 터인데...
오랜 가뭄 끝의 단비가 이보다 달콤할까?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 일정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나는 4일 날 비행기로 뭄바이로 가고 Mr.Lee는 기차로 뭄바이까지 이동하기로 했으며,
Mr.Kim은 회의에 계속 참석한다고 했다.
나의 비행기표와 Mr.Lee의 기차표 예약을 그날 밤 라메시에게 메일로 미리 부탁했다.

 자기 전에 인도에 와서는 처음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현지 시각 밤 10시, 한국은 지금 새벽 1시 30분이다.
한참 자고 있을 사람 깨우려니 미안했지만 쫓기는 일정에 적당히 전화걸 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목이 메였다.
몇 분의 통화 동안 왜 메일을 보내지 않았냐고 울먹임만 계속했다.
나의 편치 않은 목소리를 듣고 남편은 걱정된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집에는 아무런 일이 없는지 걱정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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