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이야기 - BC Talk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을 거절 당하자 세계에서 제일 가는 호텔을 만들겠노라 다짐하고 지었다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타즈마할 호텔과 오른쪽의 인디언게이트
5월 5일
새벽 4시 50분 쯤 모닝콜이 울리고 잠이 깬 안나가 급히 나를 깨운다.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5시 30분에 오기로 한 택시가 지금 왔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공항으로 갔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누군가 택시비로 200루피 이상은 주지 말라고 해서 얼마냐고 묻지도 않고 200루피(한화 6000원)를 주었다.
뭄바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젯밤 뭄바이로 떠나기 위한 짐을 꾸리기 전, 모든 마음의 짐을 풀었었다.
인도에서도 가장 더운 여름철,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책 속에 소개된 이곳저곳을 많이 둘러보고 가야한다는 거창한 욕심을 버렸다.
파리에 가서는 파리지엔이 되어보고, 뉴욕에 가서는 뉴요커가 되어보란 말이 있다.
뭄바이에 가서는 뭄바이느 (뭄바이人의 의미에서, 내가 만들고 처음 사용해 보는 신조어)가 되어볼 것이다.
이곳저곳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진귀한 인도 음식도 맛보고,
시원한 영화관에 들어가 힌디 영화도 몇 편 보고,
커피 전문점에 들러 크림 가득한 카푸치노 한 잔 시켜놓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뭄바이느들도 구경하고,
쇼핑센터에 들러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에스닉한 예쁜 옷도 골라 볼 것이다.
재래시장에 가서 그들과 흥정도 해보며, 맛있는 열대 과일도 사 먹을 것이다.
이른 아침 눈이 뜨이면 인디언 게이트 앞으로 달려가 하하 요가에도 참여하며
아라비아 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대한 인도 땅의 기운을 느껴 볼 것이다.
해질 녘에는 근처의 공원을 어슬렁거리며 비둘기를 친구 삼아 모이도 적선하고,
고개 돌려 누군가가 보이면 슬쩍 말도 건네 보고 친구도 만들어 볼 일이다.
서둘러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지그시 눈을 감고 진한 5월의 장미향을 맡을 것이다.
" Unpack pack before you pack and...
Oh! Stop and smell the roses."
뭄바이에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니 누가 다가와 내 짐 가방을 들어준다.
그러더니 택시 쪽으로 가서 짐을 실어주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10루피를 주었다.
운전수에게 꼴라바로 가자고 하며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으니 500루피라 한다.
내가 300루피라고 하니 미터기를 꺾겠다고 한다.
도착하니 390루피 쯤 나왔다. 400루피를 주었다. (한화 12000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택시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고 제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Apollo G.H. 하룻밤 728루피 (처음에 850루피 부르는 걸 깎았음, 개인 욕실, 에어콘은 없음, 천장에 커다란 선풍기가 달려 있음) 인도에서 물가가 제일 비싼 곳이 뭄바이라고 한다.
짐을 풀고 세 시쯤 리걸 시네마 쪽으로 걸어갔다.
인디언 무비는 매일 두 시 한 차례만 상영한다고 한다.
내일 보기로 하고 인디언 게이트와 타즈마할 호텔 쪽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저번에 머물렀던 숙소 쪽으로 가서 가격을 알아보았다. 에어콘이 있는 방이 하루에 550루피라 한다. Causeway 쪽은 번화가라서 방값이 비싸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따져보면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천장에 달린 커다란 선풍기 소리가 거슬려서 내일은 숙소를 이쪽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Causeway 쪽으로 가려다 저 때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 보이길래 호기심에 길따라 구경하며 한참을 걸었다. 길을 잃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어깨에 맨 가방을 손으로 꼬옥 잡고 총총 걸음으로 물어 물어 다시 Causeway 쪽으로 올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항상 외국인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Leopold Restaurant 근처 인터넷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남편으로부터 온 메일이 여러 통 있었다.
더위를 물리치기는 어렵다.
벗어도 벗어도 벗어지지 않는 더위.
더위를 물리치는 법은 없다.
다만 더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더위 속에서도 부지런히 풍물과 풍광에 마음과 몸을 빼앗기면 될 것이다.
사람들과의 부대낌이야말로 삶의 풍미를 맛보는 유일한 더위 피하는 법이다.
정한과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손목시계 하나를 꺼내어 현지 시간으로 맞추어 놓았다.
연아에게 과일을 부쳤다.
금정도서관에서 '김약국의 딸들'이란 소설도 빌려 보고 있다.
여기는 왜 이리 냉방인가?
더위 속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랑하는 여보야! 다음의 정보를 적절히 활용하면, 벵갈로르에서의 하루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네. 우선 매우 덥지만 각오를 단단히 하고(특히 얼굴 무장) 그곳 여행사를 통해 3박 4일이나 4박 5일 정도의 함피 투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 서바스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가를 하고 나면 김회장과 일정을 같이 하여 뭄바이로 와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뭄바이 일정은 아마 라메쉬가 주선하리라 믿는다. 아니면 다음 요가 학원을 찾아서 정말로 정통 인도 요가에 심취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선선해진 저녁 무렵에는 시티마켓(벵갈로르의 유명한 시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다운타운에서 느긋하게 정말 여유 있게 인도 맥주 킹피셔 한 잔을 하며 인도를 즐겨라. 너무 조급증을 내지 말고, 더위에 또는 피부 타는 것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무래도 더 많은 것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현지에서 사역 활동을 하는 선교사님들과 전화 연락을 하여서 그분들의 일들을 도와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음의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아낸 것이니 나를 믿어주는 당신이면 내가 준 정보를 적극 활용해 주길 바란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나 섣불리 혼자 이동을 감행하는 것보다 더 유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보!
거기는 너무 더워 움직이기가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더위 때문에 짜증이 매우 날 것이고, 밀착해서 당신만 위해 줄 그 어떤 사람도 없을 것이니, 더욱 힘이 부칠 것이라 생각된다.
힘 내라 힘!
어차피 여행은 자신의 외로움과의 쟁투이고 그곳 자연 환경과의 갈등이며, 함께 동행하는 사람과의 부대낌이며, 현지 사람들과의 낯섬을 친숙으로 번역하여 스스로 자신의 힘을 샘솟듯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잠재된 힘을 바깥으로 활성화시켜 여지껏의 무기력을 탈각하고 나도 내 존재를 지켜낼 수 있고, 나를 스스로 계획하고, 나에게 나를 뚜렷하게 각인시켜, 나도 향기가 맵고 고운 나임을 스스로 찾아내어 가는 과정이 여행이 아니던가!
여보 힘내라 힘!!!
정말 힘들고 짜증이 나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을 가졌던 지난 일월 달의 인도 여행을 생각하자. 그 때는 추웠고 더러웠고 도시간이나 도시 내에서 이동하는 것이 힘들고 어렸웠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이겨내면서 이제 내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고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었다. 이제 당신은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힘내라 힘!
당신은 무한한 힘을 지닌 당당한 인간이다!!!!!!!!!
이렇게 지내보면 어떨까? 3일 날 벵갈로르에 도착하면 라메쉬에게 인근 요가 학원(아쉬람)이 없느냐를 물어서 낮 동안 수강료(마이소르 정보에 의하면 일일 350루피)를 지불하고 요가를 며칠 배우는 것이다. 다른 도시 정보에 의하면 요가 학원은 한 달 치를 내거나, 하루하루 치를 낸다고 되어 있다. 벵갈로르에도 분명히 요가 학원이 있을 것이니 잘 물어 보면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4,5,6,7,8,9일 보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뒤의 일정을 같이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벵갈로르에서의 일정을 느긋하게 즐기며 느릿느릿하게 벵갈로르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가 여기를 꼭 여행하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곳을 여유 있게 즐기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현대식 백화점에도 들려 보고,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벵갈로르의 유명한 대학도 몇 군데 있으니 그곳도 둘러보고, 공원도 산책하고, 그 회의에 당신도 한국 대표로서 적극적으로 참석도 하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그곳 사람들의 재래시장도 찾아 가보고, 벵갈로르에는 한국 주재원들이나 공부하러온 한국인들도 많으니 벵갈로르에 있는 한국식당(라메쉬가 알 것임)을 찾아가서 한국인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여보 힘내라 힘!
사랑하는 여보야 나약해 지지 말고 오히려 불퇴전의 용기를 내어라!!!!
당신이 없기에 집을 더욱 깨끗하게 하고, 정한이 밥을 더 정성스레 해 준다. 생다시마를 너무 잘 먹는다. 돼지목살도 사서 굽어 먹고, 소고기도 사서 굽어 먹는다. 오늘 아침에 조미김에다 조그만 김밥말이를 20개를 해 주었더니 게눈 감추듯이 먹는다. 당신이 없으니 운동가는 것도 시들하다. 남부 인도의 음식들은 어떤 진기한 것들이 있을까? 디카 음식 찍기에 담아 왔으면 한다.
나심에게 당신이 인도에 갔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당신이 핸드폰을 갖고 있다면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여 라메쉬에게 전화하면 당신과 통화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당신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말이 있어서 지금은 당신이 파키스탄 비자가 없어서 갈 수 없을 것이라 했다. 보고싶은 나씨미이.... 아니 당신이 돌아올 날짜만 손꼽는다. 이제 8일 남았구나. 힘을 내어서 더위를 이겨내도록 해라. 손오공이 타던 근두운을 타고 가서 그놈 더위를 혼을 내 주고 말리라. 내 아내를 괴롭히다니....
벵갈로르는 인터넷 속도가 인도에서 제일 빠르다던데.....
제일 듣거나 읽고 싶은 말과 글은 " 잘 지내고 있다. 건강하다. 사랑한다."
롯데 캐슬의 초여름 하루가 새소리와 함께 하고 있다.
어제 오후부터 간간히 우리의 정원에도 폭포수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린이날. 7시 30분가량에 정한이 아침을 먹였다.소불고기 저린 것을 샀는데 양이 많아서 몇 끼를 정한이에게 해 주고 있다. 점심때는 학교 밑에 있는 돼지 국밥 집에 가서 국밥 한 냄비를 사와 냄비에 넣어 다시 끓여서 한 대접 주었더니 훌훌 말아 먹는다. 녀석이 많이 먹으니 왜 이리 마음이 좋은가? 녀석은 모를 것이다. 매일 매일 엄마의 마음도 이럴진대 녀석은 모르리라. 어쩌다 너무 맛있다고 말하는 것은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이 마음 한 가득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이제 더위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모든 것에 있는, 부정적 측면을 잠시 보류해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현재 내가 있는 상황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첩경이니 더위도 마찬가지이며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 일 테다.
사랑하는 여보!
여기는 우리가 늘 살던 대로 하루가 흐르고 있다. 그곳은 다르겠지만 힘내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곳을 품어 안아라.
빠른 연락을 바란다.
남편으로부터 온 편지를 여러 통 읽고 무더위가 싹 가신 듯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아직도 내가 뱅갈로르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뱅갈로르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와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 선교사, 뱅갈로르 한인학교, 뱅갈로르의 한글교실 등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보내주었다. 한글로 변환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영어로 더듬더듬 몇 자 소식을 전했다.
Hi, Seol!
I wrote a letter to you a few minutes ago, it took about 1 hour, but it was not sent to you.
I am so upset, so I am writing again now.
I arrived in Mumbai early this morning.
I stay in Apollo GH in Colaba.
It's a little more expensive than before and no airconditioner.
I want to move to another place.
Near Leopold restaurant there is an internet cafe, I was so happy to read mail from you.
It's too hot, so I slept a little and then I saw Gate of India, Taj Mahal Hotel and the place we had stayed this January.
I had lunch at Leopold and dinner at the opposite restaurant where we had eaten at that time.
I feel lonely that's because you are not here with me.
Tomorrow I'm gonna see a movie and look for tourist center.
In Bangalore they arranged everything for me, I wanted to be free.
But in Mumbai I have to decide all things for myself, it's not easy, too.
Yesterday evening we three people talked about next schedule.
We decided to meet in Mumbai International Airport on 12th after traveling separately.
Last night I stayed Indiranagar club in Bangalore with Anna from Italy.
This morning 6:50 I flew to Mumbai.
I have a lot of things to tell you, but that's too bad I have to write in English.
I'll come in contact with you again, maybe tomorrow.
Give my best regards to my son and daughter, and I love you.
Take care!
- Your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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