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진산 : 엄광산(504m) - 2009년 3월 15일

부산역 광장 건너편 버스 정류소에서 43번 버스를 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동 부산터널 쪽으로 우회전 합니다. 물론 만두로 유명한 영성방이 있는 차이나타운을 지나고 영주동 복국 집들도 지납니다. 버스는 부산터널 못 미쳐 옆길로 빠져 터널 입구 높은 곳에서 유턴해서 다시 오던 길 반대편 차로를 달립니다. 처음 나오는 우회전 길로 접어들면 대청공원으로 바로 가지만, 버스는 두 번째 우회전 길로 들어서 코모도호텔 쪽으로 갑니다.

승용차를 몰고 지나칠 때와는 달리 제법 높은 차창을 통해 집들 사이 틈새로 보이는 경관은 여기가 바로 부산이라는 감상을 다시금 하게 합니다. 오래된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산비탈에 가득 늘어서 있어 마치 소인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얼마 전 한 TV에서 이와 비슷한 서구 감천2동의 모습을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30-40년 전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고 우리들 삶 그 자체였습니다만, 이제 어쭙잖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어머니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서울서 손님이 와 무언가 부산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대청공원으로 안내합니다. 대청공원과 새로 만든 민주공원에서 바라다보는 부산항의 전경은 참으로 장대합니다만, 그것 이외도 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부산의 삶을 이야기해 줍니다. 특히 메리놀병원에서 대청공원으로 가는 길에 따개비처럼 따닥따닥 붙어선 작은 주택들과 골목들, 이제 수동자동차로는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은 구불구불한 급경사의 산복도로, 아무런 계획 없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작은 아파트들, 도저히 수익을 맞출 것 같지 않는 다양한 업종의 많은 가게들.

일요일 아침, 교회 가기를 원하는 집사람의 작은 소원을 물리친 체 배낭을 맺습니다. 혼자 등산하다 보면 지나치는 사람들이 “저 나이에 친구도 마누라도 없나?”라고 저를 불쌍하게 볼까,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해서 혼자서 운전해 제법 높은 산을 가면 주변 사람들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합니다. 더군다나 요즘 극심한 불경기라 도시 근교의 산과는 달리 등산객들이 많지 않습니다. 어제는 괜히 운전하기 싫어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엄광산을 향했습니다.

흔히 경고 뒷산을 구덕산이라 하고 구덕산과 경고와는 많은 인연이 있는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덕산은 대신중이나 중앙여중 뒷산, 그러니까 경고에서는 구덕터널 너머 서쪽에 있는 산이며 해발고도는 565m입니다. 현재 구덕산에는 기상관측소의 시설물이 서 있으며 멀리서도 확연하게 보입니다. 이 관측소는 반대편 하단이나 승학산 쪽에서도 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경고 뒷산은 학교를 바라다보고 오른편에 있는 것은 구봉산(408m)이며 산 건너편에는 부산고교가 있습니다. 두 학교가 이 산을 공유하고 있는데 부산고교 응원가에 나오는 구봉산이 바로 이 산이며, 일부 경고생들은 그것을 구덕산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아대 뒤 수원지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옛 이름 고원견산, 지금은 엄광산(504m)이라 부르는 산이 나타납니다. 현재는 금정산을 부산의 진산으로 부릅니다만, 도시가 확장되기 이전 부산의 진산은 분명히 엄광산이었을 것입니다. 사상-주례-개금-부전-서면-범일-초량-중앙-광복-부민-대신으로 이어지는 부산의 구시가지를 이곳 정상에서는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43번 버스의 종점이 바로 대청공원입니다. 내려서 민주공원 정문의 좌측으로 난 보도를 따라 100m 쯤 가면 구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잘 나 있습니다. 구봉산을 지나 계속 나아가면 왼편은 엄광산, 오른편은 수정산(315m)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구봉산 정상에서는 영도와 대신동 쪽이, 엄광산 가는 길의 여러 전망대에서는 주례와 서면 쪽이, 그리고 수정산 가는 길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서는 부두 쪽이 잘 보입니다. 하지만 전체가 완벽하게 조망되는 곳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엄광산에 오른 후 다시 오던 길을 돌려 수정산을 지나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안창마을을 갔습니다. 수정산을 지나 계속 능선길을 가면 능선의 왼편은 동의대, 오른편은 안창마을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고 김선일 씨가 살던 곳으로 부산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합니다. 능선을 따라 동의대에서 설치한 것으로 예상되는 철조망 밑 개구멍으로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었으며, 더 내려와 동의대 생활관 뒤에서 마을로 통하는 길이 나 있어 마을을 걸어 지났습니다. 이 마을은 작은 분지 안에 있었으며, 능선 너머 보이는 서면 쪽 빌딩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여느 곳과는 다르게 마을버스 종점 부근에 4-50대들이 모여 잡담을 하고 있었으며, 그 옆에서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것 같은 여식아이들이 여럿 모여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생경하였지만 과거로 돌아간 느낌마저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전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골목 한 쪽 귀퉁이에 풀프레임 카메라 캐논 5D의 선전 휘장이 서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아무튼 즐거운 일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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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구봉산(408m) 정상에서 바라다 본 부산 북항과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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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엄광산(504m) 정상 부근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개금-서면 일대, 황령산(428m)과 멀리 장산(634m)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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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엄광산에서 수정산(315m) 가는 도중에 바라다 본 컨테이너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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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안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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