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일반산행기 - Report
5월 15일, 낮 시간이 남았다. 올레길을 한번 걸어보기로 한다. 이왕 시작할 거면 1코스부터 가보기로 한다. 종달리 해변길은 걸어봤으니, 1코스 중에서 오름부분만을 목표로 삼았다. 시흥초등학교가 출발지점이었다. 주차한 뒤에 옆길로 들어가면서 이게 올레길이겠거니 했다. 조금 올라가서 한참을 헤메다가 겨우 제 길을 찾았다.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시흥리는 그 유래가 재미있다. 조선시대 목민관이 시찰할 때 항상 여기서부터 시작했다고 해서 시흥리가 되었단다. 시찰의 마지막은 바로 옆동네였는데,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마을이니 종달리가 되었단다. 시흥리 마을을 약간 벗어나자 마자 시흥초등학교가 나온다.
처음 계획은 시흥초등학교를 출발해서 말미오름 알오름을 거쳐 종달초등학교에서 좀 쉬고 소금밭을 지나 다시 시흥 해녀의 집에서 시흥초등학교 주차장까지 가는 코스로 잡았다. 거리도 만만찮았다. 김밥 두줄과 맥주 2깡통을 베낭에 넣어 출발한다. 올라가기 전부터 맥주부터 마시고 싶어지는 걸 참는다.
돌담길 옆에 땅채송화가 만개했다. 돌나물 꽃과 많이 비슷하다. 이제까지 저렇게 생긴 건 무조건 돌나물꽃이라고 생각했는데...제주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잘못 든 길을 따라 올라가다 말미오름 밑자락까지 왔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성산일출봉은 제주 동남부지방 조금 높은 곳이면 어디서건 보인다. 그래서 일출봉은 이 지역의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조뱅이가 한무리 떼지어 피어있다. 그 꽃대궁에 하늘소 종류 곤충이 한마리 붙어 아름다운 더듬이를 자랑하고 있다.
이꽃은 지금쯤 제주 곳곳에 엄청 많이 피는 꽃이다. 등심붓꽃. 제주와서 첨 보았다. 그런데 처음보는 꽃을 너무 많이 봤다.
말미오름에 대한 안내판이다. 응회환으로 된 수중분화구 내부에 이차적으로 생성된 화구구(화구가 있는 언덕)인 분석구를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이중식 화산체이다. 동사면에서 남사면에 이르는 화구륜은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반대쪽인 북서쪽사면에는 풀밭의 평지를 이루고 있다.
거대한 분화구는 올라가면 볼 수없고 이렇게 항공사진으로 봐야 한다. 말미오름을 거쳐 알오름까지 가는 코스다.
올레 1코스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시흥출발 쉼터에는 소원을 적어넣은 나무팻말을 걸어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소원을 빼꼭히 적어넣었다. 빈 팻말은 보이지 않았다. 빈 팻말이 있어더라면 무얼 적었을까? 생각하려니 짜증부터 난다. 난 이런 상황에 익숙치 못해 아내로부터 항상 핀잔을 듣는다. 갱상도 남자라서 그런가?....
정면에 보이는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구호가 가슴을 파고 든다. 저 사람들은 "해고당하지 않게 해주세요""계속 일하게 해주세요" 라는 소원을 빌었을 거다. 해고없으면서 평생직장을 가져 일자리 걱정없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펼수 있는 직장을 모두가 가지기를 기원해본다.
엉겅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옆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엉겅퀴와 철조망이라, 민족 분단이 떠오른다. 다시 철원평야의 엉겅퀴가 떠오른다. 제주와서 철조망 옆에 핀 엉겅퀴를 본다는 게 가슴아프다. 철조망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고 그 옆에 엉겅퀴가 때가 되어 핀 것 뿐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야 하는데....."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 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 노래가 맴돈다.
말미오름에서 다시 보는 성산 일출봉, 어 제법 멋있다. 김영갑 갤러리에 가면 제주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사진을 찍으면 어느 곳보다도 좋은 사진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앞서간 젊은 남녀가 부럽다. 둘이서 손잡고 올라갔는데 보이지 않는다. 혼자라는 게 이런 땐 불편하다. 할말이 있는데도 말 들을 줄 상대가 없어 잠간 외로원진다.
편안한 말미오름 분화구 언덕. 봄이 확 다가온다. 온 천지가 봄임을 느끼게 해 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친구의 조카가 여름에 우리나라에 와서 놀란게 있었다. 온 산이 초록색으로 뒤덮혀 있다는 사실이란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보편적이지는 않나 보다. LA의 산은 사막으로 여름에도 풀이 나지 않는단다.
이건 무슨 꽃일까? 덩굴식물인듯 한데, 노랑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산 정상 곳곳에 노란색의 꽃으로 수놓고 있다.
말미오름에서 내려다 보면 한반도 언덕이 나온다. 안내판에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찾기도 쉽다. 어쩌다 돌로 구역을 표시하다 보니 한반도 모양이 되었겠지. 설마 한반도 모양으로 만든 것은 아니겠지.
제주에선 여차하면 태극기를 내건다. 마라도인가 가파도인가에 가면 집집마다 항상 태극기를 내걸고 있단다. 왜? 4.3사건부터 6.25전쟁때까지 제주에선 군경, 정부 누구와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그 이유 때문에 학살당했다. 그 이후에도 빨갱이로 몰려 차별당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절박함을 느낄 수 없다.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선 군경편임을 나타내 보여야 했다. 육지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왜 제주에선 그럴까? 안보활동과 관변단체가 유난히 활발한 곳도 제주다. 혹시 한반도 언덕도 그런 사정과 연관있는 건 아닐까?
또 성산일출봉. 그 앞의 파란 빨간 지붕을 가진 집들, 동네가 아기자기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구제역때문에 이 지역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무밭에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날 쳐다본다. 저 황소는 더 가까이 있었다. 내가 부러 깜짝 놀라자 저 덩치도 깜짝 놀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또 한번을 더하자 또 놀란다. 멍청한 놈. 부러 놀라는 척하는 걸 저놈은 모른다. 그리곤 멀리 갔다가 쳐다본다. 옆의 암소들도 덩달아 날 쳐다보고 있다. 한가한가? 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이다.
올레길은 무조건 저 파랑 분홍 띠를 따라가야 한다. 처음 출발할 때 조금 좋은 길이 있길래 올레길이겠지 하고 따라갔다고 한참을 헤맸다. 원래부터 저렇게 철조망과 좁은 통과 장치를 만들어 놓았을까? 아니면 구제역 방지를 위해서 작년에 만든 것일까?
알프스 산의 초원같다.
양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길 옆으로 노랗고 보라색의 꽃들이 즐비하여 반기는 듯하다.
점박이 암수나비 두마리는 결혼 중. 접미하여 교미하고 있다. 수놈은 날개가 많이 상했다. 아마도 씨를 뿌리고는 죽을 거다. 숫놈이 교미한 뒤에 혹은 정자를 뿌린 뒤에 쓸쓸히 죽는 경우가 많다. 연어도 그렇고. 씨를 뿌린 뒤에는 생명에 큰 손상이 있는 건가? 좋은 봄날, 나무를 전전하며 후세를 잉태하려는 행위도 어떻게 경건하게 느껴진다.
알오름 꼭대기에서 구슬봉이들을 만난다. 봄에 만나는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가진 이쁜 꽃이다. 내가 그렇게 평가해버렸다. 막 핀 것은 파란색이 짙고 만개했을 땐 옅은 파란색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 아내와 난 컴퓨터 바탕화면이 꼭 같다. 내가 찍은 꽃 사진 중에서 이쁜 것 하나를 보내주면 아내가 그것을 바탕화면으로 깔기로 했다. 젊은이들은 커플룩을 입고 다니는데, 나이가 좀 든 우리들은 스멀그려서 그렇게 할 순 없다. 대신 커플컴바탕화면하기로 했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커플컴화면인줄. 이것도 커밍아웃인가? 이제까진 다랑쉬오름에서 본 큰구슬봉이가 커플컴화면이었는데, 이번엔 알오름에서 본 이 구슬봉이로 삼을 생각이다. 이건 진짜 비밀이다.
드디어 오름에서 내려와 동네길을 걷는다. 종달리란다. 시작이 시흥리였고, 마지막이 종달리다. 제주를 한바퀴 돈 셈이다.
배가 고파졌다. 어디서 김밥을 먹을까?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저곳이다. 연못이 있고 그 위에 적당히 앉을 자리가 있다. 종달초등학교. 잔디가 운동장에 쫙 깔려있다. 부럽다. 푹신푹신한 론 그라운드. 잔디운동장이란 말은 익숙치 않고 론 그라운드가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선 잔디운동장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제주에선 많다. 웬만한 학교의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 있다. 9살이 되어 막 뛰어 놀고 싶다. 그러면 부모님이 내가 김밤먹은 이곳에서 빙긋 웃으시며 내려다 보고 있을 것 같다. 엉뚱스럽게도 이곳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돈나무도 흰꽃을 피웠다. 짙은 초록색과 반들반들한 잎, 사시사철 초록을 잃지 않은 나무가 돈나무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왜 자꾸 궁금한게 많아질까? 진짜 9살이 되어 버렸나 보다.
다시 시흥리로 돌아왔다. 아무 생각없이 올레길을 따라가다 주차하고 있는 시흥초등학교를 훨씬 지나쳐 버렸다. 되돌아 방향만 맞춰 찾가간다. 말미오름이 이정표다. 동네길을 들어섰다. 돌담이 굽이굽이 돌아간다.
좌충우돌 혼자 다닌 나의 올레1코스 오름걷기는 이렇게 끝났다. 혼자다니는게 더 재미있다고 그냥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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