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월17일) 올라갈 오름은 모지오름이다. 표선에서 번영로를 따라 12km쯤가면 들어가는 샛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리밭이 나타나면 모지오름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유명세를 타지 않은 오름은 길이 제대로 없는 경우가 많다. 함께 온 강선생이 흥얼거린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모지오름은 아래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것 같다. 정상으로 난 직선길을 따라 숨을 조금 헐떡인다 싶을 때, 정상에 도착해버렸다.

 

상당한 분화구가 아래에 펼쳐진다. 아래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저 끝까지 걸어갈 거란다. 제법 먼 거리같다. 그러나 걸어보면 너무나 쉽다.

 

분화구 한쪽이 터졌다. 말발굽모양의 분화구라고 한단다. 그 분화구에 또 한번의 화산폭발이 있었는지 내부에 또 하나의 조그마한 오름이 생겼다. 이중오름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지형이다. 육지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편안한 길. 숲 사이로 난 길은 편안한 길. 그냥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좌우에 편백나무가 도열해있다. 편안한 휴식장소가 나온다. 음료수와 비스켓으로 허기와 갈증을 떼운다. 강선생이 "영국의 호킨스박사가 우주탄생과 지구탄생 모두가 그냥 우연이었다"고 했단다.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냥 괜찮다고 대답한다. 말도 안되는 대답도 여기선 괜찮다. 사방이 뚫려있고 바람냄새가 좋기 때문이다. 약간 땀이 삐질대는데 상큼한 바람이 불어왔으니 만사가 형통해버린 게다. 

 

모지오름은 원래 모자오름이었다는데, '자'가 왜 '지'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남쪽 방향으로 장자오름(큰아들오름)이 언덕처럼 있단다. 우리 모험심이 강한 오름대장님이 숲으로 내려간다. 삼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섰고, 얼마전에 간벌한 나무들이 널버러져 있다. 삼나무도 독이 있어 그 아래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단다. 그런데 음지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놈을 만났다. 한라새우난이란다. 어둑한 분위기에 화사한 꽃이 나란히 피어 우릴 반긴다. 기분 좋다.

 

우리의 모험은 계속된다. 큰아들(장자오름)을 만나기 위해서다. 길이 없어도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 나무로 둘러쌓여 어두컴컴하다.

 

평지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갑자기 주위가 밝아졌다. 왜??? 주위를 밝히는 금빛찬란한 꽃 한송이가 떡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새우난초같긴 한데. 이런 금빛이 나는 새우난이라니. 감탄에 감탄을 연발한다. 셋이서. 금새우난이란다.

 

주위는 어둡겠다. 꽃은 환하디 환한 금빛이겠다. 어두운 속세를 비치는 금빛찬란한 부처님같다. 맞다. 우린 지금 세상을 밝히는 부처님을 만난거다. 가장 소중한 것이 금이었고, 그래서 예로부터 성스럽고 소중한 건 금색으로 장식했다. 속세의 삼나무 숲에서 만난 금부처님으로 우리의 어지러운 세상은 단번에 광명으로 넘쳐났다.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장자오름으로 가기 위해서 또 몇번의 철조망을 통과한다. 위로 아래로. 철조망통과요령은 모두 5가지가 있다. 군대생활할 때 익힌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위로  통과, 아래로 통과, 우회 통과, 절단후 통과, 폭파후 통과. 이런걸 시험치곤 했다. 그리고 군인들은 이걸 못외워서 쩔쩔맷다. 이해하기 힘든 문제였고 공부였다. 그러면 철조망 통과에 저것 말고 뭐가 있단 말인가? 외우지 않아도 되는 저걸 글쎄, 위아우절폭이라면서 외우는 친구들이 있었다. 문제가 나오면 위아우절폭만 써놓고 그게 또 무엇의 첫글자인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내참!!!

 

이젠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저 멀리 우리가 내려온 모지오름이 보인다. 길로 돌아가려니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산으로 직선통과한 길을 멀리 돌아가는 거다. 만보쯤 걸었다고 자평한다. 만보는 얼마만한 거리일까? 1보가 75cm이라 치고 750,000cm, 7500m, 7.5km. 우리가 걸은 길이 만보는 되겠다.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기계소리가 난다. 말이 기계에 묶어 빙빙 돌고 있다. 승마용 말 훈련시키는 기계인 것 같다. 내가 말이라면 정말 짜증날 것 같다. 초원을 신바람이 나서 달려야 하는데, 저렇게 좁은 공간에 묶어 억지로 달리면 그게 운동이 될까? 스트레스 쌓여 우울증 걸리지 않을까 몰라.

 

해가 꼴딱 넘어가고 있다. 유난히 붉은 해다. 사진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 기술이 부족한 거야.

 

산에서 본 모지오름의 터진 부분이 이렇게 보인다. 말발굽형 중에서 터진쪽 정면이다. 아까는 저 반대쪽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석양의 한라산도 보인다. 저 멀리. 마지막으로 보이는 높은 산은 무조건 한라산이다.

 

어두운 세상의 등불인 금새우난, 제주의 부처님이다. 이제사 생각하니 왜 후랫쉬를 터뜨리며 사진 한장을 찍지 못했지?

 

우리들의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 우리 맘에 있는 걸까? 맞다. 우리 맘에 있는 부처를 발견해야 진정한 부처님을 찾을 수 있는 거다.

그래도 오늘은 세상을 밝히는 내 맘속의 부처를 만났다. 모지오름의 금새우난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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