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초여름 오늘은 비치미오름 올라가잔다. 날飛, 꿩雉 무슨 뜻인지 모를 미 오름. 제주에는 꿩이 많은데, 특히 이곳이 많아서 이름 이름을 붙였나? 오늘의 오름은 4명, 나만 남자다. 오름팀이 날마다 바뀐다. 대장과 나만 빼고.

  

들어가는 입구에 말 한마리가 발광하고 있다. 봄이라서 그럴게다. 봄이라서 물이 올랐고 그래서 발광하는데....그래서 묶이고 말았다. 참 진짜로 미칠 일이로다. 저 개울 건너에 말들은 한가로이 놀고 있다.

 

때죽나무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은 비슷한데 잎이 크면 쪽동백, 작으면 때죽나무... 뭐 이런 방식으로 나무 이름을 기억한다. 어릴 때 이 나무의 열매를 돌로 짓이겨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막 떠오르곤 했다. 내 또래 사람들은 이 나무만 보면 고기잡았던 옛날을 회고한다.   

 

제주에도 강도 있고 개울도 있다. 강에는 대부분 물이 없다. 비가 억수로 올 때만 강물이 찬단다. 개울도 비슷하다. 일부의 개천에는 물이 흘러가기도 한다. 지반이 바위인 경우에는 평소에도 물이 고여 있다. 여기가 그렇다. 건너에 비치미 오름이 보인다.

 

왜 비치미, 도리미, 좌보미 등, 오름 이름 끝에다 미를 붙였을까? 꼬리 尾라는 뜻이라고 그러는데, 내가 괜히 끼어 들어 본다. 산이란 뜻의 뫼, 메가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미라고 하지 않았을까? 비치뫼, 좌보메... 얼마나 발음이 귀찮은가? 제주 말의 특성이 어미를 잘라 먹고 높낮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명사인 산 이름도 그 경향이 작용한 건 아닐까? 아님 말고.

 

멀리 또 다른 오름이 보인다. 개오름인가?

 

좀 더 올라왔다. 오른쪽에 민오름이 시커멓게 보인다.

 

숲이 있고, 옆에는 잔디밭이 있다. 제주에는 잔디가 잘 자란다. 오름들이 옛날에는 모두 민둥산이었단다. 박통 때 산림녹화를 강제했고, 그래서 나무들이 울창하게 되었단다. 제주도 중에서 동쪽 지방 즉 성산쪽 지방 사람들이 고집이 셌단다. 산림녹화 하라고 해도 말 잘 안듣고 자신들 생각대로 했단다. 그래서 동쪽 지역 오름에는 나무가 적단다.

 

이렇게 멀리 오름이 보이는 건 오름 정상에 올랐다는 뜻이다. 순식간에 다 올라오고 말았다. 소나무 삼나무 숲 사이로 소똥이 즐비하다. 방목된 소가 오름 꼭대기로 숲을 통과하여 올라다닌 걸 알 수 있다.

 

비치미 오름의 화구능선에 올랐다. 반 정도는 화구벽이 있고 반 정도는 틔여졌다. 말굽형 오름이다. 능선에는 대부분 이렇게 잔디로 덮혀 있다. 잔디로 덮혀있는 넓은 산 정상을 걸으면 정말 기분좋다. 산 꼭대기가 둥그렇게 펼쳐져 있고 잔디가 깔려 있는 곳이 바로 오름이다. 육지에선 볼 수 없는 산의 모습이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뜯고 있다. 왜 소가 저렇게 있으면 한가롭다 평화롭다 라고 그럴까? 우리의 감정도 어찌보면 상용구처럼 굳어져 있는 건 아닐까? '평화의 새 비둘기'처럼 말이다. 소는 배가 고파 허급지급 풀 뜯어 먹고 있다. 누구보다 더 많이 그리고 좋은 풀을 뜯기 위해 벌겋게 혈안이 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까마귀와 까치도 그렇다. 제주엔 원래 까치가 없었단다. 그게 무슨 행사 때 육지에서 축하하는 의미로 실어와서 날려 보냈고, 그들이 번식하여 지금 제주의 수많은 까치가 되었다고 한다. 까마귀는 우리에게는 흉조쯤으로 여겼다. 색깔이 죽음을 의미하는 검은색 때문에 그랬을 거다. 흉조라는 감정은 그 까악까악하는 울음소리조차도 불길하게 여기게 했다. 생김새 때문에 생긴 감정이 새의 성격까지도 우리맘대로 정하고 말았다. 반면 까치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평소와 다른 존재가 등장하면 깍깍깍 울어댄다. 손님이 오면 까치가 우는 까닭이라고 한다. 손님을 반기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영역에서 쫓아내기 위한 협박의 소리인 셈이다. 

지금 까치는 제주의 골치덩이가 되고 말았다. 과일을 쪼아먹어 손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까마귀는 오히려 농작물에 별로 해를 끼치지 않고 벌레를 잡아먹는 등 이로운 새란다. 오름을 올라가다 만나는 까마귀는 먹이를 주면 고마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만 먹지 않고 꼭 친구들을 불러다 같이 먹는다. 한번 맺은 인연을 결코 저버리지도 않는단다. 부부의 정도 대단하단다.까마귀와 까치에 대한 선입견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바꾸면 좋겠는데....

 

사람이 능선? 에 걸어다녀도 평화롭게 보인다. 여자 셋이니 더욱 평화롭게 보인다.

 

대장님의 강의가 시작된다. 오른쪽에 몇 개 보인는 오름이 좌보미 오름, 다 답사하려면 4시간은 걸린단다. 언제 가봐야지. 이름도 이쁘지 않아요? 왼쪽에 커다랗게 길쭉하게 보이는 오름은 온갖 종류의 약초가 자라는 오름이라 하여 백약이 오름. 정상이 저렇게 평평하게 길다랗게 보이는 오름엔 가운데 분화구 즉 굼부리가 있다. 저 오름에도 올라가 봐야지.

 

앞에 보이는 오름이 민오름이다. 이승만 별장이 이 곳에 있단다. 지금도 있고, 가구와 책상 집기가 고급이란다. 이승만대통령이 제주도와서 이곳 별장에 머물렀단 말인가?

 

"뻐꾸기 우는 여름 한낮에, 가방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까만 가방, 빨간 가방, 희끄레 가방, 높다란 오름 능선에 가방 셋이서, 이야기 도란도란 걸어갑니다." 무슨 노래 가사를 바꾸어 봤게요?

 

옆에서 본 분화구 모습

 

이걸 올라간다고 해야 하나 그냥 건너간다고 해야 하나? 어쨋거나 우리가 다음에 가야하는 도리미 오름의 긴 길의 모습이다.

도리미 오름은 비치미 오름과 연결되어 있다. 비치미 오름을 조금 내려갔다가 곧바로 올라가면 된다.

 

흙은 황토같은 색이지만, 성질은 많이 다르다. 화산재나 돌 작은 것들을 송이라고 하는데, 송이가 부셔져 흙처럼 되었다. 좀 부석거린다. 황토처럼 점성이 없다. 소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길을 마구잡이 파헤쳐 놓았다.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갈 것 같은데, 물이 대부분 흡수되어 버려 실상은 그렇지 않단다.

 

올라가는 잔디길. 주변 흩어져 있는 송이를 누군가 탑처럼 쌓아놓았다.

 

저 멀리 오름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이쪽으로 오고 있다. 한라산에서 한 줄기 오름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한 축을 이루고 그것과 직각되게 또 하나의 오름 축이 이쪽에 와서 여기서 직각되게 만난단다. 얼핏 보니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맑은 날씨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보면 몰라도.

 

도리미 올라가는 길에 너무나 청초하게 보이는 쥐똥나무 꽃. 이름은 지저분하지만 도리미 오름의 꽃은 이쁘다.

 

도리미 오름의 정상이다. 산의 정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슬프다.

 

내려가는 길은 작은 숲길이다. 고사리가 많이 자랐다. 고사리싹이 거의 두달에 걸쳐서 올라온다. 4월중순부터 6월중순까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고사리순이 많았다. 그냥 퍼져서 고사리 꺾고 싶다. 제주도 고사리는 정말 맛있다. 우리 엄마는 고사리나물을 매우 좋아하신다. 경상도에서 녹말가루같은 걸 풀어 고사리를 섞어서 만든 음식을 '고사리미림'이라고 한다. 전에 꺾어놓았던 고사리와 지금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고사리를 합해서 형님댁에 보내줘야지. 갑자기 효도 한번 할 생각이 떠 올랐다. 내일 시간내서 이곳에 고사리 꺾으러 와야겠다.

 

때죽나무 꽃이 바닥에 떨어졌다. 때죽나무꽃도 떨어져 땅에 뒹굴면 쓸쓸한 낙화가 된다.

 

무덤 주변에 엉겅퀴가 떼지어 피었다. 엉자 겅자 퀴자..... 정말 우리말에서 좀처럼 쓰이지 않은 세 글자가 어울려 식물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 '갈퀴손에 호미 잡고/ 머리 위에 수건 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임의 이름' 민영 시인이 지은 엉겅퀴 시 일부다. 이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나려한다. 부르느니 임의 이름..... 전쟁통에 서방잃고 살아가는 할머니의 심정이 절절이 묻어난다. 슬프면 아름다운건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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