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토) 두번째 사려니 숲길에 도전한다. 사려니 숲길의 전 구간은 5,6월에 걸쳐 1년에 2주간만 개방한다. 6월5일(일)이 올해의 마지막날이다. 삼다수길에서 시작해서 사려니 오름까지 장장 20km가까이 된다. 우리 오름팀은 중간의 붉은 오름부터 시작해서 사려니까지 약 15km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전이라기보단 걸어보기로 했다. 험한 길은 없으나 길다. 나를 포함해서 3명이 토욜 점심도 안먹고 출발했다.

 

중간의 삼거리까지 2시까진 가야 한다. 6시에 원위치까지 데려다 주는 마지막 버스가 있는데, 그걸 타려면 삼거리까진 가야하기 때문이다.

한적한 숲길을 시간에 쫓기듯 걷는 우리 형편이 좀 안타깝다. 이런 길은 시나브로 가는 듯 마는 듯 걸어가다가 시간되면 끝내면 좋은데..

 

숲길 곳곳에 세워놓은 이정표와 현위치 표시이다. 우리는 붉은 오름 입구에서 4km가까이 걸어서 7번 지점에 도착했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사려니 입구는 까마득하다. 10km가 훨씬 넘는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할 짓은 한다. 산딸나무 꽃이 잎 위에 난짝 올라타고 피었다. 내 아내는 서울태생이고, 그래서인지 나무, 풀 이름에 대해 무지하다. 설악산 함께 갔을 때, 이름 모를 나무에 꽃이 피었는데, 이 산딸나무처럼 꽃이 잎 위에 피어 있었다. 내가 대뜸 "저 꽃은 '엽상화'라는 거야"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는 한동안 그 나무 꽃을 엽상화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들통나는 순간부터 이제까지 내가 말하는 나무와 꽃 심지어 새이름까지 믿지 않는다. 대부분은 제대로 된 이름이고 가끔 나도 모를 때 둘러대는 것 뿐인데도 말이다. 이 나무도 이름을 모를 땐 葉上花라고 하면 된다.

 

삼다수에서 출발하는 종주 길과 붉은 오름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2시 이전에 우린 도착했고,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려니 오름까지 8.5km다.

 

송이로 단장한 붉은 흙길을 걷는다. 무념무상하기 위해서 무지 생각하면서 걷는다. 쓸데없이 걷는다. 하릴없이 걷기만 한다. 무념무상 무념무상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무념무상이라는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ㅋㅋㅋ

 

박새꽃도 무념무상 경지에서 그냥 꽃을 피웠다. 우린 이 꽃에다 온갖 생각들을 붙여본다. 그러면서 또 무념무상을 생각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짓인가도 모른다.

 

여기부턴 평소에는 제한하는 통제구역이다. 산지기 아저씨가 친절하다. 들개가 있단다. 노루를 공격했는데, 노루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아 달려갔더니 이미 노루는 목을 물려 죽어가고 있었단다. 들개가 사람은 아직 공격하지 않는단다.

노루 울음 소리는 정말 괴퍅하다. 얼마전 어두스럼한 시간에 산에서 혼자 내려오는데 노루소리가 들렸다. 귀속 곡하는 소리같기도 하고 괴물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노루 소리를 몰랐다면 정말 무서웠을 것같았다.

요즘은 노루가 새끼를 낳을 때란다. 탐방객 하루는 금방 낳은 노루를 발견하곤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서 사무실로 안아왔단다. 노루 엄마는 사람이 오니 새끼를 숨겨놓고 자리를 피했는데, 그걸 모른 사람이 새끼 노루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결국 엄마를 찾아주지 못하고 야생보호협회에 보냈다고 했다. 자연은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은데....산지기 아저씨는 우리같은 사람과 말 나누기를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글. 제주도 숲을 보고 정글이라고는 하지 않은 것 같다. 열대 지방의 정글과 별반 다름이 없다.

 

내도 있다. 물이 조금 있기도 하다.

 

너도 밤나무.

산지기라는 말이 나왔으니..... 박목월 시던가? 내가 별로 좋아하는 시인은 아니지만 이 시만은 서정적이어서 기억한다. 시는 좋아서 기억하지만 그걸 쓴 시인은 좋아하지 않은 경우가 좀 있다. 박목월, 서정주..... 시인을 좋아하지 않으면 결국 그가 쓴 시도 별로여야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경우도 있다. 시는 그렇다면 자신을 모두 반영하지 않을 수 있고, 기교일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반영되어 있는 인간성을 내가 잘 인식하지 못한단 말인가? 제목이 '윤사월'이던가?

 

송화가루 날리는 / 00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기대어 / 엿듣고 있다.

 

내 기억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총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그게 더 편하다.

 

삼나무의 저 수직 상승감이 시원시원하다.

 

등심붓꽃색이 희다. 흰등심붓꽃이라 해야겠다. 흰색을 유달리 신령시하는 우리가 이 등심붓꽃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이곳 사려니 숲길에서 만날 수 있는 흰색의 등심붓꽃이다.

 

 

이런 꽃을 피우는 이 나무는 이름이 뭘까? 가을에 보라색 열매을 옹기종기 맺어 주변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나무인데...알아보니 가을에 보라색 열매를 맺는 나무는 작살나무인데, 이 꽃을 피운 나무는 말발도리 나무하고 했다. 

 

삼나무 전시림은 사려니 길에서 벗어나 100m 쯤 가야 한다. 한바퀴 돌 수 있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나무에 명패를 붙여놓았다. 나무 이름 알고 싶으면 이곳으로 오면 되지만, 모르는 이름이 너무 많아 사실은 오나마나다. 그리고 비슷비슷한 게 너무 많아 구별해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목이란다. 초연히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이름 모를 비목이여....

굴거리 나무

큰 삼나무가 빽빽히 들어차 있다. 사진으로는 작은 삼나무와 구별이 잘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들이 나무를 껴안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야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나도 안아 봤다. 한 아름이 넘는다. 나의 한 아름이 160쯤 된다치자. 한 아름이 넘으니 나무의 둘레는 200쯤 되겠지. 2파이R=200, 그러므로 나무의 직경 2R은 200/3.14=63cm 직경 63cm 쯤 되는 나무임을 알 수 있다. 대강 짐작했는데, 아래쪽 평균 흉고직경과 일치하네.....아직도 녹쓸지 않은 이 수학 아니 산수력ㅋㅋㅋㅋ

제주도에서 가장 높고 큰 그리고 나이 많은 삼나무이다. 나이가 80살이 다 되어 간다. 우리 어머니보단 젊다. 나무는 나이 들수록 더 튼튼하고 굵어지고 높아지는데, 우리 엄마는 반쪽이 되었다. 꼬부랑할머니에다 몸무게는 확 줄어들어 버렸다. 그래도 정신은 정정하시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서 살겠다고 했더니 "아이고 이누무 손아, 그기가 어디라고 가노?" 하며 걱정부터 하셨다. 나무처럼 더 튼튼해졌으면 좋겠다. 나무는 좋겠다. 나이들어도 꼬부라지지 않고 더 멋있어져서.

갈림길마다 이런 이정표가 붙어 있다. 복수초 갈림길. 초봄에 노란꽃이 피는 복수초가 이곳에 무진장하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겠지. 우린 당현히 사려니오름 쪽 즉 왼쪽으로 간다. 시간도 충분하다.

길가에 핀 키가 쭈뼛 솟은 풀의 하얀 꽃이 이쁘다. 그냥 지나가버리면 그렇고 그런 꽃이 이렇게 찍어 자세히 보면 이쁘다. 앙증맞다.

이곳에 팔색조도 사나보다. 새소리는 끊임없이 들린다. 깊은 산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오개새도 제주에선 어디서건 들을 수 있다. 산속과 사람사는 대처가 구분이 새들은 구분이 안되나 보다. 바다 한 가운데 섬이라 산속과 대처가 새들에겐 그 환경이 구분안되나 보다. 오개새라고 어릴 때 부르던 새는 사실 휘파람새였다. 오오오 오개오갯 하는 소리가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팔색조 소리는 어떤지 모른다.

백금향. 열매는 잎 속에 단단히 감췄다.

세심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저 충남 해미에 개심사란 절이 있고, 그 절 올라가는 입구의 동네 이름이 세심동이다. 마음을 열어젓히려면(開心) 마음부터 씻어야 한다(洗心)는 의미였다. 여기서도 맘을 먼저 닦아본다. 정자 지붕이 일본풍이 돈다. 일본에서 오래 살다온 목수가 지었나? 서까래가 이중이고 위서까래와 아래서까래가 만나는 중간의 천정에 많은 부재를 넣어 지붕 모양을 직선되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걸 생략했다. 지붕 길이가 길지도 않은데 굳이 2중으로 서까래를 깔 필요도 없고, 서까래를 하나만 걸쳤다면 지붕 모양이 저렇게 될 리는 없다. 괜히 딴지를 한번 걸어본다. 그래도 불만이다. 우리나라 정자의 좋은 전형이 얼마든지 있는데, 저렇게 일본풍이 덕지덕지 묻어나게 정자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우린 당연히 사려니 오름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뒤에 온 사람들이 갑자기 서둔다. "셔틀버스가 5시에 마감한대요" 우리도 급해졌다. 셔틀버스를 놓치면 대략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어? 세심정이어야 할 이정표의 제목이 새심정으로 되어 있다. 아래의 이정표 안에는 세심정으로 바르게 되어 있다. 저 착오? 봐 줄까? 세심의 뜻을 한자로 느끼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의 착각이겠지? 산림청에서 저지른 조그만 실수.

나무가 작은 바위를 집어삼키고 있다. 앙코르 유적의 축소판 같은 모습이다. 따푸롬 사원은 발견될  당시의 모습을 가능한 살리고 있는 사원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지은 사원이라고 한다. 나무가 바위가 아니라 성벽을 집어삼키고 있다. 열대 정글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이곳 제주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어 이채롭다.

따프롬 사원.

사려니 오름의 정상이다. 나무계단과 능선을 올라가면 이렇게 전망을 위하여 전망대를 세워놓았다.

앞에 보이는 전경에서 찾을 수 있는 오름과 산의 위치를 표시해 두었다. 좀 오래되어서 명확하지가 않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저 멀리 중앙에 보이는 오름이 물찻오름(거문오름)이다. 붉은 오름에서 삼거리쪽으로 걸어오면 그 삼거리 부근에 있는 오름이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다. 출발지가 가물가물 보인다. 사려니 숲길. 5월말이면 걷기 좋아하는 사람은 제주 사려니 숲길로 오셔요.

반대 바다쪽 전경이다.

내려간다. 계단도 있지만 계단을 피해 꼬불꼬불 내려가는 길도 나타난다. 우린 꼬불꼬불길을 택했다. 왜냐고? 기냥.

내려가는 길가에 머털도사가 서 있다. 털은 아니고 뿌린가? 뿌리가 왜 모리에 붙었지?ㅋㅋㅋㅋ

벌통이다. 사려니 숲길 곳곳에 벌통이 산재했다. 올해 꿀 생산이 형편없단다. 작년에 토종벌들이 습격당해서 많이 죽었단다.

다 내려왔는데, 50m쯤 남겨두고 버스가 가버렸다. 20분마다 온단다. 5시에 막차라고 한 건 루머였다. 근무자들이 만들어내어 퍼뜨린 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거의 마지막이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근무자들도 철수했다. 안내에는 분명 6시까지라고 되어 있고, 버스도 5시 20분까지 있었다. 20분을 더 기다려 우리만 타고 다시 원위치 붉은 오름 입구에 도착, 그리고 헤어졌다. 오늘은 토욜이었거든.

사려니 숲길 사람과 자연의 약속입니다.

1년에 한번, 늦봄에 사려니 숲길을 개방합니다.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주 사려니 숲길을 기억하세요. 5월과 10월 중순에는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을 기억하세요. 무료이면서도 불거리가 많아요. 미어터지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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