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친구가 내려왔다. 제주에 사는 친구부부와 좌보미오름 같이 가기로 했다. 아내와 이렇게 다섯이서 노리고 노리던 좌보미 오름을 갔다.

 

 백약이오름에서 만나 좌보미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인듯한 곳으로 옮겨 차를 주차하고 들어간다. 오름으로 막 올라가는 길은 없고 넓은 평지로 걸어간다. 언젠가는 올라가는 길이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막연히 걸어간다. 완연한 여름이다. 초록에서 연초록이 사라졌다. 짙은 초록색이 향연을 벌이고 있다.

 

 소들이 길을 이리저리 만들어놓았다. 한 놈이 앞장 서면 나머지는 모두 그 놈을 따라 간다. 소떼가 지나가면 없던 길도 새로 생긴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간다. 자꾸 간다. 올라가는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늘도 여름이다.

 

청명한 여름날씨다. 바람도 많이 불지 않는다. 하늘엔 맑디맑은 구름들이 떠 다닌다. 땅에는 그들의 그림자가 바삐 움직인다. 구름의 속도가 장난이 아님을 그 그림자 속도를 보고 느낀다. 길도 없는 곳을 구름은 재빠르게 날아 휙휙 지나간다.

 

 이때까진 좋았다.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험하지는 않다. 개괄지가 끝나고 산길로 접어든다. 길은 있으되, 망개나무(청미레덩굴)과 찔레나무가 길쪽으로 뻗어나 있어 다니는 것 자체가 어렵다. 혼자나 아내와 다닐 때는 항상 쉽게 길을 찾았는데,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 이모양이니 여간 체면 구기는 일이 아니다. 거의 한시간을 올라가는 길도 못찾고 헤맨다.

 

 삼나무 숲이 나타났다. 모두 지쳤다. 무거운 짐을 줄이기 위해서 각자 가져온 먹거리를 서로 꺼내놓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순전히 짐을 줄이기 위해서. 드디어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좋은 길은 아니다. 올라가며 내려다 보는 작은 오름들이 올망졸망하다.

 

봄꽃은 사라지고 여름꽃이 하나씩 피어 있다. 딱지풀이 가장 이곳 이 시기를 대표하는 꽃이다. 청초하다. 잎은 별로다. 딱지풀이 지천에 피어있다.

 

 저 멀리 바다쪽으로 오름들 너머 바다가 넘실거린다. 날씨가 맑으면 제주의 오름들에선 저렇게 바다가 항상 보인다.

 

유명한 오름에는 길이 잘 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는 길이 없거나 있어도 찾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학교 오름대장도 길을 찾기보단 거의 만들어가며 오름을 올랐다. 그런 생각으로 좌보미에 도전했다. 무작정 올라가기는 너무 한 듯 해서 올라가는 길을 찾으려다 오름 둘레를 거의 한바퀴 다 돌아버렸다. 뒤따르는 친구들이 힘들었을 거다. 그래도 어쩌겠나? 오름이 그런 걸.

 

아!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왼쪽), 손지오름(중앙), 용눈이오름(오른쪽)이 보인다. 다랑쉬오름에서 이들 오름의 모양새를 익혔더니 금새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일대가 오름의 천지임을 알 수 있다.

 

짚신나물의 노란 꽃이 반긴다.

 

고추나물, 잎자루가 없는 잎이 원줄기를 반쯤 감싸고 잎은 긴 타원형에다가 끝이 둔하다. 이 설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니 채고추나물로 보아야 하겠다. 한 송이가 이쁘게 활짝 웃고 있다.

 

오름, 평지, 오름들, 그 사이 사이 평지. 제주 중산간의 모습이다.

 

멀리 한라산의 자태가 드러났다. 오름들의 총대장인듯한 모습이다. 한라산으로부터 수 많은 오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라산은 오름의 어머니같다. 큰 물방울로부터 작은 불방울이 하나씩 하나씩 흘러나오는 형상같다.

 

또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제주 전역이 생기기 시작한게 300만년전쯤인데, 성산 일출봉은 60만년 전에 생겼단다. 가장 젊은 오름이다. 그래서 아직도 모서리의 각도가 살아있다. 오름에 오르면 멀리 보이는 일출봉은 거의 방향타 구실을 한다.

 

잔디의 연초록과 소나무 삼나무의 짙은 초록이 오름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인가 보다.

 

또 다른 방향에 자리잡고 있는 멋있는 백약이오름. 이름있는 오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좌보미오름이다. 크고 작은 오름들, 그 사이사이의 풀밭들이 여름을 창출하고 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길이 아니면 다니기 힘들다.

 

층층이꽃이 층층이 피었다. 그래서 층층이꽃이라고 한다. 참나무는 왜 참나무라고 했을까? 그 나무로 숮을 만들면 참숮이 되고, 그래서 그 나무를 참나무라고 불렀단다. 이게 뭐 말이나 되는 말인가? 층층이꽃과 참나무는 다른가? 이름붙여진 사연이.

 

제주의 오름을 오르다 보면 철조망을 통과해야 할 일이 많다. 철조망은 말과 소의 통행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철조망통과 요령은 주로 저렇게 아래로 통과한다. 중간에 약간 느슨하게 매여져 있는 경우엔 중간 통과도 한다. 친절하게 통과하라고 밑에 박스종이를 깔아놓은 경우도 있다.

 

또 한라산과 그의 자식들인 오름들.

 

콩과 식물 하나가 노란꽃을 피워 반긴다. 우린 저런 모습을 무조건 우리를 반기는 거라 생각한다. 왜? 기냥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어쩔래??

 

오름대장격인 내가 길을 찾는데 실패했고, 그래서 엄청 힘들게 만들었으니 대장자격을 거의 상실했다. 이때부턴 토론이 시작된다. 각자가 가고 싶은 길을 주장한다.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장은 가만히 결정에 승복한다. 아! 권위를 상실한 대장의 초라한 모습이여!! ㅋㅋㅋ

 

그래도 타래난초가 내 심정을 안다는 듯이 줄지어 반긴다. 괜찮아, 원래 오름길은 다 그런데, 아직 오름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이 길이 없다고, 없는 길로 안내했다고 불만인 거야. 원래 오름 올라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거든. 그걸 아는 니가 참아, 응.... 참 좋은 타래난초다.

 

빨간 타래난초로는 나를 설득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흰 타래난초가 등장한다. 난 그만 설득당하고 만다. 흰타래난초는 첨 본다. 약간 붉은 기운이 감돌지만 전체적으로 흰색꽃이다. 흰등심붓꽃이 사려니숲길에 있더니, 좌보미엔 흰 타래난초가 있다. 청초한 모습에 한참을 같이 논다.

 

친구들과 함께 올라간 좌보미 오름은 험난하였으나, 진정한 여름을 만났다. 권위를 상실한 대장의 초라한 심정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나 붙잡고 술먹자고 떼를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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