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일반산행기 - Report
대록산을 거쳐 이승악오름을 신산리 친구의 안내로 올라갔다. 8월 중순경이었다. 아내, 김선생님, 신산리친구, 나 이렇게 4명이서 올라간다. 이승악오름은 봄에 한번 올라가려다 입구를 찾지 못해 실패한 오름이라 기대가 더 컸고, 기대보다 훨씬 멋있는 오름이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 2-1 일대. 표고 539m, 비고 114m, 둘레 2,437m, 직경 700m
이승이오름은 '이슥이오름'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이승이' 또는 '이슥이'라고 부름. 산 모양이 삵(삵퇭이)처럼 생겼고 또한 삵쾡이가 서식한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음.
오름에는 구실잣밤나무,붉가시나무, 참식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성수목과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의 낙엽수와 곰솔 등의 침엽수가 혼재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자금우, 제주조릿대, 새끼노뤼귀, 십자고사리, 새우란, 흑난초 등의 양치류와 초본류가 서식하고 있다. 안내판의 글이다.
신례리 목장길을 따라 거의 1km을 올라오면 목장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 나무밑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우리의 코스는 목장갈림길에서 이승악 등반코스 갈림길로 가서 이승악 등반코스로 올라갔다. 이승악정상을 거쳐 지도상 현위치라고 되어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화산탄 지역을 거쳐 표고재배장 갈림길을 거쳐 다시 이승악 등반코스 갈림길로 와서 목장갈림길까지 가는 기나긴 코스였다. 왕복 전체 거리는 3km 가까이 되는 길이었고, 시간은 2-3시간쯤 소요되었다. 물론 해찰이 우리의 심한 경우는 4시간은 족히 걸렸다.
올라가는 입구는 온통 고사리 천지다. 소나 말은 고사리는 먹지 않는다. 독이 있나? 그렇담 사람들은 그 고사리를 먹고 괜찮을까? 어미말이 거의 다 커가는 청소년 자식과 함께 풀을 뜯고 있다. 망아지를 제주에선 몽생이라고 한다. 자신처럼 살아가야 할 자식을 데리고 있는 어미 말의 모습이 애틋하다. 자식을 보고 있는 어미의 심정이 보인다.
이승악 오름의 입구. 말을 못들어가게 하는 문일까?
나무엔 콩짜개와 송악이 닥지닥지(제주말로는 데작데작) 붙었다. 제주의 곶자왈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만큼 아열대 기후이며 습기가 많다는 뜻이다.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이다. 줄로 길을 표시하고 있다.
이 나무는 왜 이런 모습일까? 아랫도리가 배배 꼬였다. 아마도 송악같은 덩쿨 식물이 이 나무가 어릴 때 칭칭 감아 올라 갔으리라. 덩쿨이 잡아 매고 있는 부분이 아닌 쪽으로 나무는 굵어졌고, 그래서 이런 모양이 되었을 거다. 송악같은 덩쿨나무가 저절로 죽어 없어졌을 리는 없고, 사람이 덩쿨나무를 베어주고 나니 저런 모양이 되었을 거다. 내가 나무라면 송악덩쿨을 제일 무서워할 것 같다.
산 정상에는 정자가 멋있게, 그러나 바닥은 지저분한 채로 자리잡고 있다. 앉아서 담소 나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잊어버렸다.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받침 같은 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정자의 난간에 저렇게 앉아 있자니 엉덩이도 아프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신발벗고 들어가라고 해도 아무도 지키지 않을 것 같고. 그런데 어쩐지 정자가 일본풍이 나는 것 같다.
우리의 정자는 서까래가 드러나고 두리기둥(둥근 기둥)을 대부분 쓴다. 그리고 난간에 약간의 장식을 하면 바깥을 내다보는 창틀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모양이 이쁘다. 이건 너무나 기둥과 지붕과 난간이 만드는 뚜렷한 4각형이어서 멋대가리가 줄었다. 지붕과 기둥, 도리 서까래 이 모든 것들이 규격화되고 그래서 정확한 사각형을 구성해서 자연스런 맛이 전혀 없다. 우리식이 아니다. 산중에 정자를 지으면서 이렇게 인공풍이 강하게 풍기게 만들다니, 안타깝다. 그래도 바깥 경치는 볼만하다.
나뭉마다 이름표를 붙여놓아 이름을 알게 해놨다. 이름을 열심히 익혔다. 사진을 보면 이름을 충분히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곤 이름표를 찍지 않았다. 이제 보니 나무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나의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도 또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이게 한계다.
이승악 갱도진지가 나타난다. 이승이악 갱도진지 안내판 글 :
이승이악에서는 총 2개소의 갱도진지와 관련된 시설이 확인되었다. 1개소는 갱도 내부까지 확인되는 갱도진지이며 나머지 하나는 갱도진지의 진입부만 굴착하다 중단된 곳이다. 이승악은 '일본군 제58군 배비00도'에 전진 거점 진지로 표시되고 1945년에 제작된 일본군 군사지도인 '제주도병력기초배치요도'에는 이승악일대가 주요진지대로 확인되고 있다. 1945년 경 제주도에 배치된 일본군 중(구)서귀포시는 108여단 관할지로 108여단 사령부주둔지는 미악산 일대였다. 미악산 전방으로 4개의 주진지대가 포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이승악은 전진거점진지이며 신례천을 사이에 둔 수악은 주저항진지였다.
입구부에 함몰되어 겨우 한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만 틔여 있다. 입구에는 동서에 하나 씩 두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는 일자형이다. 입구를 포함한 갱도진지의 형태는 'ㄷ'자형이다. 입구부의 규모는 동쪽 출입구가 길이 4.5m, 폭 2m이며 서쪽 출입구는 길이 4.5m, 폭 1.7m이다. 내부 진지의 규모는 총 길이 24.2m, 폭 2.6-3m, 높이 2.2m이다. 내부에는 갱도 진지 중앙 북쪽벽면 바닥에 부식된 갱목 2점이 박혀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은 제주도를 미군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온 곳에 갱도진지, 즉 땅굴을 파서 요새화했다.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승이악처럼 험한 곳을 그냥 내버려뒀을 리 없다. 거대한 요새를 이곳 이승악 지하에 건설하였던 것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이런 돌멩이가 막 날아다녔고, 여기에 떨어졌다. 그래서 화산탄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화산탄도 부식되고, 그래서 나무들이 화산탄을 흙 삼아 자랐다. 바위에 뿌리내린 나무들의 모습이 육지에선 보기 어렵다.
숯가마의 안내판이 또 눈에 띈다.
제주도의 숯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이원조(1792-1871) 목사가 저술한 탐라지초본의 요역 중 '초색탄(草索炭)' 부분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위 내용을 보면 숯은 지방관아의 주요 공진 품목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후기부터 제주 산간지역에서 활발하게 숯을 구웠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숯 생산기록은 1981년까지 통계에 기록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연탄과 석유의 보급과 산간지역의 삼림보호로 인해 자취를 감추었다. (중간의 작은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의 숯가마는 일제진지동굴 북쪽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반지하식의 석축요(石築窯)이다. 숯가마와 동일한 형태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가마로 연소부와 소성실, 소성실을 겸하고 있는 성토부 그리고 전면작업장 등을 갖추고 있다.
원시림과 같은 길을 만능스포츠맨 우리 선장님이 걸어가고 있다. 제주도에서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고 자전거로 오름도 오르락내리락하며 보호활동도 벌이고, 배드민턴도 수준급이고, 축구에도 열성적이다. 그의 부인이 남편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만능스포츠맨과 산다고.
삭막한 화산 잔해들이 흩어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공기와 접촉하면서 부식하여 흙이 되어가고 있다. 그 곳에 나무들이 뿌리를 박아 살아가고 있다. 뿌리를 깊이 박을수록 나무는 크게 자랄 수 있었다. 다른 곳보다도 이런 곶자왈의 나무들은 뿌리가 더욱 튼실하다. 아예 뿌리쪽이 줄기의 몇배도 넘게 굵어진 나무도 많다. 식물들도 자연 환경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종들이 번성했을 것이다.
한 곳에 두 나무가 함께 컸다. 동물처럼 장소를 옮길 수도 없으니 그들은 어울려 온몸을 부대끼며 살아갔다. 0개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서로를 보듬고 한덩어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들 사이에 숭악한 송악이 또 타오르고 있다.
나무와 노박덩굴이 바위를 흙으로 착각하고 함게 나뒹굴고 있다. 제주에서만 볼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승악 오름은 이렇게 전인미답의 원시림같은 분위가가 감돈다. 저 구석기 때 사람들이 돌도끼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서려 있다. 참으로 좋다.
원시풍의 풍경은 계속된다. 처음에는 이런 광경에 감탄하고 신기해 했으나, 점차 익숙해져 그런가 보다 한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경치에서도 나타난다. 한계감탄체감의 법칙인가?
가끔 엄청 큰 나무들도 보인다. 그래도 식물의 뿌리들은 단단한 돌이나 바위를 부셔뜨리지 못하고 자신의 몸인양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저렇게 큰 나무로 성장했다. 뿌리를 얼마나 깊이 박았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이 곳이 또 바람이 좀 많은 곳인가? 바람에 아니 뮐려면 깊은 뿌리를 가져야 함을 용비어천가에서 알려주지 않았던가?
화산암과 화산탄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어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이승악에서 확인되는 화산분출물 중에 눈에 띠는 것은 오름의 북편 아래에 군집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이다. 게다가 이 바위덩어리에는 동남아시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에서 봄직한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뿌리와 성장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승악에서 확인되는 거대 바위덩어리는 화산분출물 기준으로 볼 때 거대 화산암괴(보통 32mm 이상)에 속하며 일부 환산탄도 확인된다. 화산암괴와 화산탄은 화산폭발 당시 그 무게가 무거워 분화구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떨어지는 데 대체로 정상부근과 그 인접 지역에서 관찰된다.
화산분출물은 크게 고체, 액체, 기체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고체는 크기에 따라 화산암괴, 화산탄, 화산력(지름 4-32mm), 화산진(지름 0.25mm 이하) 등이 있으며 액체는 마그마가 지표로 나온 용암, 화산가스와 융합된 산성을 띤 호수, 폭발 진동으로 나무나 돌 등이 물과 함께 쓸려 오는 화산이류가 있다. 기체는 이산화탄소, 황화수소, 염화수소, 아황산가스 등이 있다.
맞다.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잊혀진 사원에서 나무들은 성벽을 타고 뿌리를 내려 자랐다. 끝내 그들은 성곽을 집어 삼켰다. 뿌리가 꼭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다니며 땅을 찾아 내려가 뿌리를 내렸다. 담위에서 나무는 땅으로 내려박은 뿌리 덕분에 거목으로 자랐다. 대부분의 사원은 이런 나무들을 제거하고 사원으로 복원했으나, 자야바르만7세가 어머니를 위하여 지은 따프롬 사원은 관광용으로 이렇게 남겨두었다. 그래서 더 신기해하고 인기가 있다.
따프롬 사원의 흙은 사암으로 되어 있어 그 땅의 성질이 어쩌면 제주의 곶자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앙코르 유적의 나무들은 열대지방이어서 훨씬 나무의 크기가 거대하다. 그렇다. 이승악 오름은 앙코르 유적의 따프롬이랄 수 있겠다.
이런 곳에 평상을 만들어 쉬어가라고 배려했다. 원시림 분위기가 감도는 곳에 평상이 있으니 그냥 마을로 가지 말고 살고 싶다. 아침 일찍 도시락 튼튼하게 싸 와서 이곳 평상 부근에 텐트라도 하나 치고 평상에 앉아 하루 종일 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여름에 꼭 한번 그렇게 하고 말리라. 하루는 안되고 적어도 3일 정도는. 벌써부터 내년 계획이 이렇게 세워지고 있다.
뒷쪽으로 다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한바퀴 돌았다. 신산리 선장님이 왜 이승악 오름을 제주에서 최고의 오름이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최고라는 말에는 사실 좀 문제가 있긴 하다. 각각의 특성들이 있어 어느게 좋고 어느게 덜 좋고 이런 차별은 없다고 본다. 차이는 있다. 화산탄 위에 나무가 자라는 그 원시림으로서의 이승악 오름이 있다면, 벌거숭이여서 능선의 부드러운 곡선이 일품인 용눈이 오름이 있으며, 깊은 분화구가 있고, 너무나 가파른 능선이 있어 접근하기 힘들면서도 웅장하고 포근한 체오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승악오름의 그 원시적인 분위기가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짐승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막 난다. 대학 때 같은 학번이지만 4살이나 많은 생김이 우락부락하여 짐승이라고 별명을 붙인 형이 생각난다. 쌀막걸리 처음 생산되었을 때, 기숙사가 떠나가도록 "병철아, 막걸리 한잔 하자"라고 고함쳤던 형이 오늘은 자꾸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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