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금요일, 아내가 제주에 온다. 공항에서 버스타고 표선으로 오라고 했다가 혼났다. 모시러 꼭 와야 한단다. 6시 반쯤 공항에 도착하는데, 시간이 좀 남는다. 번영로를 따라 가다 좌우에 있는 작은 오름 하나쯤은 올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선택된 오름이 이 오름이다. 길가에서 가까이 있기에 오름 쪽으로 차를 돌렸다.  

마을쪽에 가서 오름입구를 물으니 다시 나가서 다른 길로 들어가야 한단다. 겨우 이 우진제비오름 입구를 찾았다. 조금 더 들어갔더니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탐방로란 표시가 있었으나 왼쪽을 택했다. 한바퀴 돌면 입구가 나오리란 판단에서. 반바퀴 쯤 돌았을 때 길이 막혀버렸다. 안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여기서 많이 허비했다. 다시 삼거리까지 와서 왼쪽 길을 택해서 조금 갔더니 입구가 나온다.

 

안내판 뒤에 우진제비오름의 안내글이 있다. 퉁글고 통통한 산체에 서쪽 봉우리가 주봉이며,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가진 화산체로 화구 안사면의 기슭에는 샘이 있다. 표고 410.6m, 비고 126m.

 

길이 잘닦여 있다. 길이 없는 곳은 나무가 너무 빽백하다. 동네사람들은 무시로 들락거릴 수 있는 멋있는 산책길일 거라 보인다. 부럽다. 산림욕하기 위해서 과천숲을 찾아야 하는 서울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호사스럽다.

 

길가에서 만난 이삭여뀌가 꽃을 피우려 용을 쓰고 있다. 곧 꽃으로 터지리라.

 

이 시기의 제주 오름들에 가장 많이 보이는 꽃은 바로 이 산박하꽃이다. 조그만 잎에 꽃도 작다. 앙증맞은 꽃이 지천에 피었다. 자세히 봐야 이쁘다. 그냥 무심코 지나면 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꼭 우리네 장삼이사 선남선녀같다.

 

누군가 오름 등반로 주변을 잘 정리해놓았다. 동네사람들이 그랬을까? 아니면 제주시 차원에서 정리했을까? 묘 벌초하듯이 깔끔하게 풀을 깍아놓았다. 고맙게시리.

 

어두웠던 등반길의 끝이 보인다. 햇빛이 드는 걸 보고, 꼭대기가 다 되었음을 안다.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주변 경관을 충분히 잘 보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주변을 전망한다. 표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오름들 모습이 생소하다. 아직 올라가 보지 않은 오름들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저 오름들과도 아는 사이가 될 것이다.

 

저 두 오름은 생김새가 비슷하다. 형제같다. 오른쪽 오름이 가까이 있어 조금 크게 보인다. 밤톨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붙인 바매기오름인가?

 

한라산 쪽의 풍경은 이 부근 오름들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층층이 겹쳐 있는 오름들의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크게 솟아 있는 오름 대장이 바로 한라산임을 알 수 있다.

 

산박하꽃이 지천에 피었다. 저렇게

 

우진제비오름의 산 아래에 음지진 곳에는 물봉선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조금 올라오면 방울꽃이 물봉선을 제치고 흐드러지게 피었다. 내 친구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라며 이 방울꽃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우진제비오름에선 방울꽃과 물봉선꽃이 지금 이 시기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방울꽃이 어림도 없지만 여기선 다르다.

 

주홍서나물도 이 시기 제주를 물들이는 대표적인 꽃이다. 하도 많아 주목을 못받는다. 꽃만 그런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꽃과 비슷하다. 살아가는데 온갖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특별하게 뛰어나지 않아 주목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람이다. 그들이 사실은 소중한 사람의 삶이다. 주목받지 않는다 해서 서러워할 일도 아니다. 이 주홍서나물처럼 말이다.

 

내 고향 산에도 많이 맺혔던 이 나무 열매가 기억이 난다. 이름을 모른다. 이젠 나무 이름을 알아 줄 생각이다. 내 친구 모산재가 알려줄 거다.

 

온 우진제비오름을 덮고 있는 풀 꽃이 물봉선꽃이다.

 

중턱 쯤에 샘이 있다. 이름하여 우진샘이란다. 제주에선 샘을 세미라고 발음하고 적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우진샘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끊이지 않아 가문이 들었을 때에는 선인동, 덕천에서까지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산세가 천월장군이 태어날 곳이라 하는 명당이다. 우진샘에서 보는 벵벵뒤는 천군이 모여 있는 상이고, 우진샘은 천월장군이 칼을 차고 사열하는 터라 하였다.

 

아마도 최근에 정비한 것 같다. 풀도 깨끗이 깍아놓았다. 산에 이런 샘이 있으니 산책하는 데 더욱 안성맞춤이다. 참 좋다. 이 부근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욕심이 울컥 솟아난다.

 

다 내려왔다. 아내가 도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막 뛰어내려왔다. 저 앞에 기다리는 내 차가 어서오라고 야단이다. 늦게 가면 아내에게 질책듣는 건 난데 왜 지가 야단일까? 웃긴다.

 

결국 공항에 20분 늦게 도착했다. 금요일 오후 제주시내는 차가 많이 막힌다. 보통 때 같으면 충분히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을 거다. 금요일 오후라는 점을 내가 시간에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지각이었다. 이건 순전히 금요일이기 때문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아니다. 진짜로 진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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