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연휴라고 아내가 제주에 왔다. 노루오름 갈까? 산방산부근 올레길 걸을까? 갑자기 이렇게 날씨가 좋을 때, 한라산 한번 가보자고 했다. 성판악코스는 가봤으니 관음사길로 백록담에 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했으면 일찍 서둘러야 했다. 밥해먹고 꿈쩍거리다. 8시에나 출발한다. 관음사등산로 주차장에는 9시에 도착했다. 12시 반까지 삼각봉대피소에 가야 백록담으로 올려보낸단다. 거리가 9km 쯤 되었다.

 

과연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까? 길을 찬찬히 뜯어본다.

 

주차장 바로 위에는 야영장이다. 요즘도 야영하는 사람이 많나 보다. 여기서 야영하고 낮에 한라산 등반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관음사 계곡은 깊다. 길 옆으로 냇가가 따라 올라간다. 그 계곡은 육지의 계곡과는 다르다. 동굴이 나 있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소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냇가를 가로 질러 건너기도 한다. 길따라 모로레일이 따라 올라간다. 냇가를 건너는 모노레일 다리다.

 

백록담 올라가는 길은 두군데 밖에 없다.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가 그것이다. 관음사길은 이렇게 잘 정비되어 있다. 군데군데 다니기 조금만 어려워도 판자로 길을 덮었다. 한참동안 이런 숲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관음사코스는 해발 800m쯤에서 출발해서 비고가 높은 편이다. 성판악은 1100m부터 시작해서 비고가 낮은 편이다.

 

이곳에도 숯가마터가 있었다. 상당히 완벽한 모습이다.

 

화산암에는 중간에 동굴이 생기기 쉽다. 무슨 동굴이라해서 그 길이가 400m가 넘는다고 했다. 길옆에 그 동굴과 연결되는 수직굴이 형성되어 있다. 위험표시가 있고, 못 들어가게 벽을 만들어두었다.

 

계곡을 하나 건너면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된다. 햇빛을 받아 나뭇잎의 초록색이 그야말로 황홀해졌다. 초록색 하나로도 이렇게 멋있어지니 감탄스럽다.  경사가 제법 급하다. 헉헉거린다. 거의 50분을 걷고 조금 쉰다. 이정표의 시간대로만 가면 12시 전에 삼각봉대피소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위틈새로 길이 나 있다. 높은 산을 올라가는 내가 터득한 요령은 다음과 같다. 올라갈 때는 천천히, 평지에서는 올라갈 때 드는 힘을 사용하여 빨리, 내리막은 뛰어 간다. 작대기같은 보조물을 충분히 활용하여 다리로 집중되는 힘을 분산시킨다. 줄이나 잡을 수 있는 나무가  있으면 충분히 활용한다. 즉 온몸으로 등산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훨씬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해발 1100가 넘으니 제주에선 보기 힘든 금강송, 즉 적송이 군집해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나 자라는 금강송이 이렇게 쭉쭉 뻗어 있어 이채롭다. 정말 탐나는 재목감이다. 한라산 1100미터와 1300미터 사이의 생태환경이 강원도 산골짜기 조건과 비슷한가 보다. 관목과 활엽의 숲길, 금강송의 숲길, 전나무 숲길, 구상나무 숲길, 한라산 등반에선 이렇게 여러 종류의 숲길을 만난다. 

 

엉겅퀴가 제철을 만났다. 활짝 핀 엉겅퀴꽃도 보라색을 띠고 있다. 잎에 침이 대단하다. (한라)바늘엉겅퀴쯤 되지 않을까 싶다.

 

드디어 삼각봉대피소에 도달했다. 물론 12시 전이었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밥도 꺼내 먹는다. 나는 다리가 아파도 올라갈 수 있고, 허리가 아파도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배고프면 못올라간다. 그래서 수시로 먹으면서 올라간다. 이웃이 나눠준 감귤을 먹고, 왕만두도 먹고, 김밥도 먹는다. 힘을 다시 추스려 올라간다. 안내방송이 울러나온다. 백록담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리고 하산하려면 지금 출발하는 것도 늦었다고. 삼각봉은 말 그대로 삼각형 봉우리다. 뽀족한 모습이 재밌다.

 

삼각봉에서 백록담까지는 2.4km, 2시간 정도 걸린단다. 삼각봉에서 계곡으로 100m쯤 내려갔다가 계곡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 계곡 내려가는 길에서 이 꽃을 만났다. 뭐 이런 꽃도 다 있나 라고 식물도감에서 본 꽃이어서 금방 이름이 생각났다. 한라돌쩌귀. 이름도 웃긴다. 보랏색이 감도는 파란색이 너무도 이쁘다. 백록담 못올라가면 어때? 꽃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삼각봉에서 계곡 떨어지는 곳 사이에 집중적으로 피었다.

 

돌멩이 하나, 아니지 바위 하나가 산이 만드는 선과 수직으로 뻗어 있다. 덧니같다.

 

한라돌쩌귀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처음보는 꽃을 이렇게 많이 보다니....사람들은 이 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다. 으례히 산에는 꽃이 있기 마련이지 라는 모습으로 흘깃 스쳐지나간다. 난 처음 만나는 꽃이라 요리보고 조리보고 요모조모 뒤집어보고 세워보고 온갖 짓을 다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산죽 사이에 그 그늘 아래에서 자라 키가 산죽보다 커져서, 햇빛을 만나자 꽃을 피운 것이다.

 

계곡에는 멋진 다리가 놓여 있다. 위로 한라산 정상의 모습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다리 이름이 용진각 현수교다. 아마도 이곳에 전에 용진각이라는 대피소가 있었나 보다. 다리에도 제주의 상징인 해녀상이 있다. 다리를 건너서 계곡을 타고 조금 올라가다가 또 본격적으로 급경사로 올라간다. 성판악에서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이쪽으로 내려오면서 교차한다. 서로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수고많습니다. 인사 나눈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인사 나누는 게 일상이 되었다.

 

급경사로 조금 올라가다 왼쪽으로 돌아올라가려는 곳에 노란꽃이 피었다. 잎을 보았더니 곰취다. 올라가면 곰취꽃이 엄청 피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곰취꽃은 이미 다 져버렸다. 한라산에 늦게 핀 곰취꽃을 이렇게 만난다.

 

그 옆에는 청초하기 짝이 없는 하얀꽃이 만발했다. 이게 무슨 꽃이더라.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다. 집에 와서 겨우 식물도감, 인터넷을 뒤져서 찾았다. 자주꿩의다리란다. 이쁜 여자를 만난 것 같다. 그냥 기분이 좋다. 이쁜 여자를 만나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같다.

 

또 올라간다. 아내는 다리가 좀 아프단다. 이름 모를 나무가 빨간 열매를 달고 있다. 그 사이로 한라산의 능선이 멀리 보인다.

 

어라. 이건 또 뭘까? 등산하면서 나의 해찰은 계속된다. 아내의 속도가 늦기 때문에 그것에 맞추려면 이렇게 해찰을 즐겨야 한다. 작은 키의 식물 사이에 노란게 띄엄띄엄 보인다. 꽃인가? 아니다. 그렇담 기생식물인가? 버섯인가? 아직도 모른다. 한 곳에서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큰 나무 하나가 사방팔방으로 팔을 벌리고 있다. 왜 저럴까?

 

전나무들은 산죽을 방석삼아 쭈삣쭈삣 서 있다. 장비같은 수염을 하고서. 산꼭대기에 거의 다 왔다는 상징이다.

 

열매를 단 구상나무가 옹기종기 서 있다. 그 너머로 백록담이 보이기 시작한다. 앗싸!!!

 

정상 직전 쉼터에 서니 백록담의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아! 백록담. 물이 차 있으면 더 좋을텐데. 걸음이 바빠진다.

한라산 능선들이 굵직굵직하다. 백록담에서 흘러내린 용암들이 저렇게 능선을 만들고 계곡을 만들었을 거다. 오른쪽 아래로 제주시가 보인다.

 

어 안개가 올라오고 있다. 이제까지 없었던 안갠데. 전에 백록담 왔을 때도 안개 때문에 백록담을 제대로 못 보았는데, 이번에도 그럴까? 아내에게 천천히 오라고 해놓고는 뛰어 올라간다. 안개보다 더 빨라야 백록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오는 순간 보이는 건 사람들이었다. 연휴를 이용해서 성판악에서, 관음사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떼지어 쉬고 구경하고 있다. 사람들이 장관이다.

 

다행히 안개보다 약간 빨랐다. 백록담에는 호수가 없다. 물론 흰사슴도 없다. 사람들은 엄청 많다. 아 내 카메라의 한계. 촛점이 더 짧은 카메라가 있어야 한 컷에 다 들어올텐데. 어쩔 수 없을 때는 빨리 포기한다. 이 정도로 만족해버린다. 다른 분화구처럼 한바퀴 돌아보았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많이 망가지겠지. 그래서 또 이것도 참는다. 어쩔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짓밟고 지나가는 데도 불구하고 쑥부쟁이 한 송이 이쁘게 피었다. 한라산 꼭대기에서. 이것도 청초하다.

 

또 김밥을 꺼내 먹는다. 감귤도 듬뿍 먹는다. 판자 깔아놓은 평평한 장소에서. 맛있다. 시원하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한라산을 드디어 올랐다는 자부의 모습을 본다. 애들도 어른들도 드디어 한라산을 올랐구나 내가 하는 분이기가 넘친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의 표정이다. 한 시간쯤 놀다가 내려간다. 차가 있는 관음사로 도로 내려간다.

 

내려가다 자주꿩의다리 하나를 또 만난다. 올라오다 만난 것보다 더 많이 피었다.

 

한라돌쩌귀도 다시 구경한다. 음지에서 꽃을 피운 이 놈은 색이 연하다. 그래서 더욱 청초한 모습을 띠었다. 귀티마저 감돈다.

 

무리지어 핀 놈들을 또 다시 본다. 좋은 것을 뒤에 두고 떠나는 심정이 생겨난다.

 

삼각봉 대피소 앞에 핀 이 꽃은 무슨 꽃일까? 이 시기의 한라산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노란 꽃이다.

 

 아내는 무릎이 엄청 아픈가보다. 업고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올라갈 때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제주에 사는 친구가 내가 제주시에 가까운 관음사까지 왔으니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6시 전에는 내려가야 하는데 아내의 걸음걸이는 점점 늦어진다. 나의 무릎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오른쪽이 아프더니 왼쪽도 아프다. 연골이 마찰이 심해서 뼈끼리 충돌하는지 심하게 아프다. 그러다 내 무릎은 어느 순간부터 괜찮아졌다. 아내는 울상이다. 업어 내려갈 정도가 되었을 때, 경사가 완만해졌다. 같이 내려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앞서 있었다.

 그러면 또 해찰이 발동한다. 우연히 숲속을 보다가 이상한 존재를 만났다. 초록색어 전혀 없는 걸로 봐서 기생식물, 부생식물, 아니면 버섯일 거다. 한 송이도 아니고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월요일 학교에 가서 수소문했더니, 수정란풀이라고 했다. 낙엽이 썩고 그걸 양분삼아 자라는 부생식물이란다. 참으로 희안한 식물을 만났다. 줄기가 수정처럼 희디 희어서 붙인 이름인가?

 

올라갈 때 급한 마음에 보이지 않던 이끼 낀 관음사 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물이 고여 있고, 습기가 항상 풍부하니 이끼기 잔뜩 끼었다. 숲과 물과 이끼 그리고 적당한 어둠이 좋은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절뚝거리며 겨우 주차장까지 왔다. 고생했다. 너무 훈련없이 무작정 올라간 한라산이었다. 그래도 너무 신바람난 등산이었다. 한라돌쩌귀와 자주꿩의다리 그리고 수정란풀이 등산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연락해서 제주시의 우리집이라는 횟집에서 맛있는 회를 실컷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어했던 회가 요즘은 좀 심드렁해졌다. 낚시로 잡은 벵에돔 혹은 한치 또는 독가시치(제주말로는 따찌)에 물들은 나의 입맛이 횟집에서 양식한 물고기의 회맛을 신통찮게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우연히 잡힌 큼직한 우럭 한마리를 오랫만에 회를 떠서 먹어 보았더니 영 그 맛이 별로였다. 우럭회가 맛이 별로가 되었으니 이 고급화된 나의 입맛을 위해서 열심히 낚시해야 된단 말인가? ㅋㅋㅋㅋ.

어제 한글날 용마테니스대회에 참여했다. 정말 아깝게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매년 함께했던 대구와 부산의친구들이 빠져 전력에 차이가 많았던 탓일 게다. 내년에는 우리의 특기, 패자우승을 다시 한번 이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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