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한산은 참 좋은 산이다. 정말 멋있는 산이다. 원래 삼각산이라 했는데, 북한산성이 있다고 해서 언제부터인지 북한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북한산의 등반코스는 360개쯤 된다. 많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북한산을 오를 때마다 다른 코스를 선택하는 사람과 항상 한 코스로만 오르는 사람이 그것이다. 나도 한 때는 후자인 적이 있었다. 북한산 숨은벽 코스로 일요일마다 오른 적이 있다. 그만큼 북한산 숨은벽 코스를 내가 좋아한다는 말이다.

11월 1,2일 서울 출장을 가란다. 10월 31일은 월요일이어서 하루 연가를 냈고, 그래서 시월의 마지막날 월요일 혼자가 되었다. 거의 10여년만에 숨은벽을 올라가보기로 한다. 어려운 코스가 있긴 한데, 뭐 올라갈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유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우이동 종점까지 가서, 김밥을 세줄이나 사고, 도선사 신자들이 타는 버스를 얻어타고 도선사까지 간다. 도선사 입구에 부처님이 한 분 세속의 한가운데 앉아 계신다. 앞에 서 있는 저 버스를 공짜로 태워줬으니 절 한번 하고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나의 등반로는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우이동에서 숨은벽 코스 가는 길은 사실 없다. 전에도 출입통제하는 군사시설 지역을 지나야 했다. 깔딱고개까지 땀 한 재기 흘려야 올라갈 수 있다.  

 

단풍이 지고 있다. "지난 주 단풍이 최절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서 한발 늦었음을 느낀다.

 

깔딱고개가 하루재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숨을 깔딱거려야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의 고개 이름이 왜 하루재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인수봉의 자태가 희멀겋게 보인다. 시원하고 멋있다. 저 인수봉을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백운대가 나타나는 정상의 코스다. 숨은벽은 인수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나타난다. 오늘의 코스는 여기에서 밑으로 내려가 인수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 백운대에 도달하는 길이다.  

 

전에는 없었던 출입통제 간판이 간간이 보인다. 오늘 목표가 숨은벽이니만큼 통제선을 넘어 슬쩍 아래로 내려간다. 곧 익숙한 길이 나타난다. 나같은 사람이 어제 일요일에도 있었나 보다.

 

사실 이 코스는 길이 제대로 없다. 왠만해선 제대로 길을 찾기 힘들다. 오래전에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길을 헤매지 않고 찾아 간다. 고개를 서너개 넘고 깊은 골짜기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아무도 없다. 통제지역이기에 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조용히 걷기만 한다. 혼자는 편할 때도 있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약간은 무섭기도 하다. 올라가다가 뒤돌아 본다. 이 길을 조금 올라가면 절터가 나오는데....

 

드디어 절터에 도착했다. 절터에는 물이 졸졸 흘러나와 이 곳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곤 했는데.... 이젠 물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봐라 아까는 인수봉이 햇빛을 받고 있었는데, 이젠 해를 등지고 있지 않은가? 축대도 있고 기와도 보이고 그릇조각도 보인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절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그냥 단정하고 이곳을 절터라고 한다. 김밥 한줄 꺼내 먹고, 이곳 저곳을 기울이며 20여년 전 과거를 되새겨 본다. 혼전 집사람과도 여러번 왔었던 곳이니만큼.... 

 

절터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숨은벽이 나타난다. 서울 우이동쪽이 아닌 저 아래쪽 경기도 쪽에서 올라오는 코스가 나 있다. 이제부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숨은벽의 위용은 옛과 다름없다. 인수봉을 형성하는 하나의 바위 능선인데, 그 능선이 가팔르고 멋있으니 그게 숨은벽이다. 왜 이름이 이렇게 붙여진지는 모른다. 서울 쪽에서 보면 전혀 나타나지 않은 숨어 있는 벽이란 뜻이겠거니 한다.  

 

왼쪽 길은 흙길이나 재미 없으니 오른쪽 바위길을 택한다. 그 길의 오른쪽은 절벽이다. 똥구멍이 간질간진한다.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면 왜 똥구멍이 간질간질하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저 위에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앉아 세상타령하고 있다.

이런 사진을 인증샷이라고 한다. 사진을 부탁한다. 10여 년만에 올라온 이 숨은벽에서 인증하나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좋은 곳이다라면서 눈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곳을 올라왔음을 서로 뿌뜻해 한다.

가까이 솟아 오른 암벽 하나 있고, 그 뒤에 인수봉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통해서 인수봉은 올라갈 수 없다. 인수봉은 훈련받은 자만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앞에 솟아 오른 암벽 밑으로 내려가면 백운대로 올라가는 골짜기가 나타난다. 그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숨은벽에서 곰골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찮다. 위험지역이라면서 혼자서 가는 것은 금지한다고 했다. 오늘 여러번 법규를 어기고 있다. 이러면 안되는데..... 옛날이 생각나 자꾸만 어기고 있다. 이 지역은 등반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낙석이 떨어져 깨진 돌덩이가 뒹굴고 있다.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중간에 샘이 하나 있는데..... 왜 빨리 나타나지 않지?

숨이 턱에 닿을 때 쯤 되어서 샘이 나타난다. 바가지도 놓여 있다. 그러나 물이 고여있는 정도 밖에 안되고 먼지들이 섞여 있어서 마시기에 무리다. 그래도 악착같이 바가지로 여러번 시도해서 맑은 물을 만들어 조금 마셔본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버너에 불붙여 쌀을 일궈 밥을 하고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했었지. 소주도 한병 까고. 그래서 노래도 한자루 하고 올라갔었는데. 80년대 당시에는 북한산 전체가 삼겹살 굽는 냄새로 진동하기도 했었는데..... 참으로 무감각한 시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취사금지가 내려져 도시락을 가지고 산에 오른다는 것이 처음에는 얼마나 이상하던지.... 이곳이 대표적인 밥해먹는 장소였었다.  

곰골을 끝까지 올라가면 인수봉과 백운대를 가르는 곳이 나타난다. 앗 철재길이다. 쇠붙이 길을 만들어 놓았다. 저 곳을 올라가면 백운대로 가게 된다는 말인가? 이 곳을 통과하는 동굴이 하나 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철재길 오른쪽으로 가파른 곳을 올라가면 그 곳에 동굴이다. 호랑이굴이라고 했다. 편안한 철길을 마다하고 또 위험하니 가지말라는 안내글을 무시하고 호랑이굴로 올라간다. 숨은벽을 완성하는길은 호랑이굴을 통과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이 호랑이굴을 통과하는 특별한 요령이 있다. 베낭을 앞으로 매고 등을 바위에 붙이고 발로 앞 바위를 짚고 팔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게 그 요령이다. 이 방법대로 하면 쉽지만 아래로 내려가서 통과하려면 상당히 어렵다. 바위 틈새로 난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게 북한산 특히 숨은벽을 오르는 특별한 재미다.

드디어 다 통과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다보는데 모자가 없다. 어디갔지? 호랑이굴을 들어올땐 분명히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굴 입구에서 베냥을 앞으로 매다가 벗겨진게 분병하다. 다시 굴 입구로 올라간다. 틈새에 끼워져 있는 모자를 쓰고 다시 한번 통과한다. 두번째는 훨씬 수월했다. 경험이 이렇게 중요한건가 보다.  

인수봉이 바로 코 앞에 보인다. 저 멀리 수락산도 보인다. 한참을 넓적바위에 앉아 바라본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데 이 아무생각도 없이 존재한다는 게 어렵다. 무념무상. 눈이 있어 앞을 바라보고 바위가 있으니 보이는 것 뿐이다. 뭐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도 없다. 그냥 편안하다. 곰골을 올라와서는 호랑이굴을 통과하니 인수봉이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 앞에 어쩌면 나와 같은 높이에 서 있다.

이곳에서 백운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난코스 중에 난코스다. 급경사 바위가 나타난다. 옛날에는 그냥 서서 올라간 것 같은데, 도저히 서서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둘이라도 되면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면 쉬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길 수밖에. 풀과 나무를 간신히 잡고 겨우 올라간다. 잘못되면 그대로 중상 이상이다. 또 하나의 코스는 바위벽을 가로 질러 가는 길인데, 여기에는 손잡이가 특별히 없다. 이것도 간신히 통과한다. 마지막 코스는 별로 어렵지 않는 코스였는데, 오랫만에 갔더니 가장 어려운 코스가 되어 버렸다. 나무가 하나 있고 그 나무를 왼쪽 뒷발로 탁 차고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면 되는데, 그 나무가 뽑혀져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겨우 중간까지 바위틈으로 올라갔으나 더 올라갈 수가 없다. 다시 내려와 베낭을 바위틈에 끼우고 겨우 올라간다. 정말 힘들었다. 중간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잠간동안의 시간은 그야말로 막막했다. 죽다가 살아온 기분이었다. 통제하는 곳에는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하는데.....

어려운 코스를 다 통과한 뒤에 마시겠다고 짊어지고 간 막걸리 한통을 마신다. 꿀맛이다. 취기가 약간 감돈다. 기분이 최고다. 윗에서는 백운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화기를 꺼낸다. 이제까지 밀렸던 사람들 모두에게 전화질해댄다.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건다. "와 이래 빨리 죽지도 않은지 내가 걱정이다." 곧 90이 되는 어머니는 항상 이렇다. "시골에 갔다가 어제 부산에 왔다. 시골에 가면 부산이 궁긍하고 부산에 있으면 시골에 가고 싶고 그렇다." 한참동안 대화가 이어진다. 이어서 사업실패로 곤란을 겪고 있는 형에게 전화한다. 일당 벌러 공사장에 전전하는데, 전공인 전기가 소용되어 승진했단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단다. 내일 저녁에 술한잔하자고 약속한다. 이번에는 동생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동네 친구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막걸리 한통 마신 사람의 아량이 막 베풀어진다. 그보다도 높은 산에 올라오니 생기는 아량일지도 모른다. 기분이 흔쾌해졌다.     

백운대에는 사람이 많다.

1975년 대한산악회에서 이런 글도 남겼다. 아! 1975년에 산악회사람들은 도시가 아닌 이 산 꼭대기에 통일을 희망하는 이런 글을 다 남겼구나. 유신체제가 모순을 양산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바쳐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싸우기 시작하는 그 때, 산악회 사람들은 이 산꼭대기에 이런 글을 남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족통일을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 쯤으로 활용하고 있을 그때였는데 말이다. 나는 이런 비석과 글을 상당히 싫어한다. 철거해야 한다. 사찰에 세워져 있는 민족통일기원비 이런 것도 싫어한다. 민족 통일을 위한 진정한 방식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백운대 정상 그곳엔 이런 글귀도 있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 울타리도 세웠다. 3.1운동 때, 독립선언문 전체는 아니지만 독립선언을 했다는 내용의 글귀란다.

백운대에서 저 서쪽방향으로 바라보니 전망이 장난이 아니다. 뻥 뚫린 공간에 겹겹이 둘러싼 산이 장관이다. 멀고 가까운 산들이 짙고 옅은 색으로 구분된다. 능선의 모양도 제각각이다. 시원하다. 체게바라의 모토사이클다이어리 영화에 나오는 마추피추 장면같다. 마추피추를 헬기를 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서 아래로 조망하는 영상이 나온다. 그때 그 장면이 대단한 장관이었는데, 백운대에서 보는 산세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월요일인데도 많이 백운대에 올라가나 보다.

높은데 올라가는 이유는 내려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려간다. 끼리끼리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먹고 잡답한다. 저런 잡담이 재미 있을 것 같지? 아닐 때도 많다. 쓰잘데 없는 소리이거나 맘에 들지 않은 말일 때는 차라리 혼자였으면 좋겠다 라고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혼자이면 또 여럿이 모여 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전부 아래를 보고 있다.  

그래서 난 위를 쳐다보았다. 바위덩어리가 굵직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백운대 꼭대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836m높이라고 했다. 서울 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화강암 바위덩어리들이 멋있다. 가끔 위를 쳐다보기도 할 일이다.

백운대를 조금 내려오면 금방 만경대가 보인다.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만든 문이 위문이다. 북한산성의 작은문 중에 하나이다. 만경대와 백운대 그리고 인수봉 이렇게 북한산에서는 가장 높다. 그것들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니 산 이름도 삼각산이 되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김상헌의 시조라 알고 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후금(나중에 청으로 바꿈)의 공격을 자초한 서인정권, 그들은 끝까지 청에 사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에 끌려갔다. 지금으로 치면 보수세력의 중심인물 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어쨋거나 북한산은 삼각산이라 불렀고, 그 이름이 삼각산 승가사 라는 일주문에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어디로 갈 건가? 5시 반에 혜화동에서 친구들 만나기로 했으니, 그 시간을 맞추면 된다. 위문에서 막바로 도선사로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다. 무조건 용암문쪽으로 가기로 한다. 이제까지 온 길을 다시 살핀다. 도선사에서 하루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하루재에서 아래로 내려가 인수봉 왼쪽으로 돌아 백운대에 올랐다가 위문으로 내려왔고, 이제는 노적봉이 있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위문의 모습이다. 아마도 암문이었을 거다. 비밀통로란 뜻이다. 동서남북에 큰 문을 만들고 적은 모르는 비밀문도 만들었는데, 그것을 암문( 暗門)이라고 한다.

노적봉을 향하여 내려간다. 경치가 또 괜찮다. 시원시원하고 깔끔하다. 가을이고 화강암이고 북한산이라서 그렇다.

골짜기 위쪽의 단풍은 다 시들었다. 아래쪽에는 아직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북쪽 골짜기의 생김새다.

노적봉과 만경대 사이에 있는 암문이 용암문이다. 백운대와 대동문의 중간쯤에 있는 암문이 용암문이다.

그런데 용암문의 암자가 暗이 아니고 岩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暗을 생각하지 못한 자가 당연히 岩이겠지 하고 표시한 건 아니었음 좋겠다. 더 이상 가는 건 무리이다 싶어서 한참을 망설이다 내려가기로 한다. 대동문까지, 그리고  그곳에서도 다시 도선사로 가는 건 재미도 없을 거라 생각해 버리고 내려간다.

북한산성 안내지도이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전반 숙종때였다. 백운대쪽의 가파른 곳은 자연지형을 이용하고 평지에는 성을 축조했다. 청의 간섭을 받고 있던 때라 조심스럽게 공사를 진척시켰다. 동서남북에 대문을 만들고 중간 중간에 암문을 만들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도 조성했고, 군대도 편성했다. 그게 금위영이던가? 군사지휘소도 성안의 조금 높은 곳에 축조했으니 그게 장대다. 서장대, 동장대 등등.. 병자호란때 강화도 몽진이 불가능해지자 남한산성으로 가서 농성했는데, 북한산성은 서울 가장 가까이 있는 도성을 지키지 못할 때를 대비한 가장 위급한 시기에 옮겨가 전쟁을 치를 방어를 위한 성이었다.

 혼자일때 사진을 찍는 방법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 방법 밖에 없다. 이것도 인증샷에 해당한다.

성위의 구멍 뚫린 여장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고, 아래의 성벽이 아마도 숙종 때의 것으로 보인다.

용암문을 지나서 약간 음지진 곳에 아직 단풍이 남았다. 역시 단풍은 빨간색이 최고다. 단풍 몇 이파리가 그리움을 뿜어내고 있다.

내려가는 길은 단풍의 연속이다. 40대 여인 셋이서 "어머 이쁘라. 애 우리 여기서 사진찍자." 서로 번갈아 가며 사진포인트에서 사진찍는다. 견우가 등장한다. 그리고 은근히 끼어든다. "셋이서 한번 찍어 줄까요?" 부탁하지도 않은데도 사진 찍어준다고 자청한다. 단풍은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짙어져 갔다. 

도선사까지 거의 다 왔다. 단풍이 점점 짙어진다고 했지!! 봐라 내말이 틀렸나?

절들이 정치인을 모시고 있는 걸 난 싫어한다. 도선사는 박정희 육영수를 신봉한다. 그래서 절 안으로 잘 안들어간다. 산에서 내려와 아래로 가려니 자연스레 절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홍콩 저자거리같다. 공사를 또 벌이고 있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올라갈 땐 몰랐던 은행과 참나무 단풍이 제법 이쁘다. 가을 냄새가 폴폴 묻어나오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의 아량이 단풍의 멋을 재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내려갈 땐 도선사 버스를 탈 순 없다. 염치도 없고 사람이 많아 태워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스팔트길을 걸을 순 없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도선사까지 올라오는 산길이 있다. 물으니 5분쯤 위로 올라가면 오른쪽 길이 나온단다. 오늘은 완전한 숨은벽 산행길이라 하지 않았는가? 산길을 택한다. 더 산 아래라서 그런지 단풍이 더 곱다.  

북한산 숨은벽을 거의 10년만에 올랐다. 그것도 혼자서. 그 사이에 출입이 통제된 곳도 많았다. 10년이어서 강산이 바뀐 것이다. 자신감과 선행자가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등반도 그것이 없을 땐 무지무지 어려워진다.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은 조건이어서 더 어렵다. 북한산 등반의 그 아슬아슬한 재미를 만끽했다. 다시는 이 코스에 오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도 안될 것 같았다.

시간 맞춰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더 신명나게 많이 마셨다. 1차는 삼겹살집이다. 우리들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예약을 하면 그 자리는 우리를 위해서 남겨둔다. 2차는 혜화동 우리들의 아지트에서 마셨다. 친구들은 남녀가 섞여있고, 30대에서 60대까지 섞여 있다. 그래서 더 재밌다. 이 친구들과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비슷하다. 생각이 통하면 만남이 신난다. 그래서 반갑고 재미있나 보다. 나는 숨은벽을 오랫만에 올랐다는 뿌듯함으로 더 신명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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