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인천을 출발해서 홍콩을 경유해서 델리에 1월3일 저녁에 도착했다. 1월 4일 첫번째 관광한 곳이 델리의 붉은 성, 레드포트였다. 거대한 나라이니만큼 성도 거대했다. 첫번째 궁궐에 들어가서 제대로 구경했는지 아슴하다. 레트포트는 일단 거대하다. 건물과 정원이 잘 어울려 있고 어느 것이 옛날 건물인지 어느 것이 현재 건물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레드포트의 평면도다. 평면도를 통해서 건물 이름을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건축광이었던 샤자한이 1639년부터 1648년, 거의 10년에 걸쳐 세운 궁궐이다. 궁궐은 황제의 거처이자 정치의 핵심이다. 그래서 전쟁에 대비하여 철저한 방어와 공격을 위한 시설들을 겸하고 있다. 붉은 성 역시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지었다. 코끼리 부대가 돌진하지 못하도록 입구의 방향을 급격히 꺽기도 했다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성벽 밖에는 해자를 설치해서 공격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자는 많이 메워졌고 물은 말라버렸다. 해자에는 입구쪽으로 다리가 놓여져 있다. 지금은 쓰레기가 흩어져 있다. 오른쪽 지붕있는 건물은 아마도 초소였으리라. 

 

이 입구인 대문을 라호르 게이트라고 한다. 라호르는 파키스탄으로 편입된 도시다. 무굴시대에는 델리, 아그라와 함께 라호르는 무굴의 도읍지였다. 성문이 라호르를 향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인도풍이 좀 풍기는 것 같다. 사암의 색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성 전체의 분위기가 고색창연한 느낌이 든다. 가장 위 가운데에 흰 둥근 지붕이 7개가 있다. 왜 7개일까? 성의 넓이와 비례를 맞추다보니 우연히 7개가 되었을까? 아니면 어떤 상징이 있을까?  

 

1857년 인도에서는 거대한 반영인도민족운동이 일어났다.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들인 세포이들이 중심이 되었다 해서 흔히들 세포이 항쟁이라고 한다. 영국은 군인들을 동원해서 상회사를 지원해서 인도민족항쟁을 짓밟았다. 이때 영국인들은 엄청난 포격을 퍼부어 레드포트를 파괴했다고 한다. 세포이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뒤에 영국은 무굴제국을 공식적으로 멸망시켜버렸다. 아울러 인도를 동인도회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에서 국가가 직접 지배방식 바꾸었다. 

 

이런 붉은 성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사람은 인도의 초대 수상이었던 네루였다. 그는 성을 복원했고 1948년 성문에 올라가 인도 독립을 선포했다. 그 옛날의 무굴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것이다. 라호르게이트를 지나니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무굴제국 시기에는 성안에 거주하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으로 찻타촉이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바자르였다. 지금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장신구 등이 많다. 여행 초반에는 좀처럼 물건을 사지 않는다. 우리의 누구도 여기를 기웃거리지조차 않았던 것 같다. 

 

찻타촉의 마지막 끝부분에 서 있는 이 건물, 바자르를 통과해서 뒤돌아보면 보이는 이 2층 건물이 나우밧 카나이다. 여기서 황제나 왕자가 지나가면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현재는 전쟁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세포이항쟁 때의 황폐해졌던 붉은 성의 사진도 볼 수 있다는 데, 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입구쪽에 서 있는 제법 위용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좀 더 들어가면 붉은 색의 화려한 건물을 만난다. 황제가 공식적으로 외부인을 접견하는 디와니암이다. 무굴제국 시기에는 루비와 사파이어 등의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단다. 영국인들이 세포이 항쟁 때 모두 약탈해갔다고 한다. 1903년 영국 총독인 쿠르존이 많이 복구했으나, 그 이후에는 관리하지 않아 들개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단다. 최근에는 제법 잘 관리하고 있어 제법 위엄이 느껴진다.  

 

황제가 외국의 사신들을 이 곳에서 접견했겠지. 왕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 중앙에 높고 화려한 자리를 마련했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자한이니 대리석으로 꽃을 장식하는 것 쯤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새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그물망을 쳐놓아 화려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황제나 된 듯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기둥이 줄지어 나열하고 있으면 일단은 멋있다. 권위가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다. 모양을 이쁘게 꾸민 기초에 다면의 기둥을 올리고 기둥머리 역시 화려하게 꾸며 아치이 아래자락을 떠 받치고 있다. 아치는 그냥 둥근 반원 형태가 아니라 작은 반원 형태를 여럿 붙였고, 가장 높고 가운데는 중괄호 모양으로 꾸며 최고로 화려하게 꾸몄다. 기둥과 천정의 장식들이 만들어내는 직선과 곡선이 어디서 보아도 혼잡스럽지 않고 귀티를 드러내고 있다. 하루 아침에 나타난 꾸민새들이 아닐 터이다.

 

디와니암을 지나면 그 뒤에 왕의 사적인 접견, 혹은 여자들과의 접견소인 디와니카스가 나타난다. 아마도 궁궐 안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흰 대리석을 사용했다. 외양은 네모난 건물 위에 네개의 귀퉁이 지붕을 만들고 정면에는 크기가 같은 5개의 칸을, 측면에는 큰 칸 3개와 그 사이에 작은칸 2개로 구성했다.

 

곱슬 머리 모양의 아치가 앞뒤, 옆으로 나열하고 있어 우아함을 더하고 있다. 황제가 여자들을 만나고 연애하고 꼬시고.... 그래서 우아하고 정말 귀티나게 꾸몄다. 디와니카스가 제법 위엄을 나타낸 건물이었다면 디와니카스는 화려해서 황홀경을 나타낸 건물이라 하겠다. 황제가 여자들을 만나고 연애하고 꼬시고.... 그래서 우아하고 정말 귀티나야 했다. 건물이 이렇게 화려해야 여자들이 넘어오나? 아니면 건물이 이정도는 되야 황제가 여자들을 만날 마음이 생겨나는 걸까? 우리나라 궁궐도 임금이 빈들을 만나는 곳은 이렇게 화려했다.

 

흰 대리석의 사각 기둥은 아래부터 위까지 멋들어지게 장식했다. 사각기둥의 모서리는 다시 둥글게 꾸몄다. 조금 반반한 면이 나타나면 꽃을 장식했다. 앞면에도 측면에도. 저 꽃은 색있는 대리석을 끼워 넣어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놓았다.

 

이 꽃을 한번 보시라. 백색의 대리석에 무늬로 나타낼 부분을 홈으로 파내고 색있는 대리석을 쪼개 그 안에 박아 넣었다. 우리는 자기에 저런 기법을 사용했다. 표면을 파내고 파낸 곳에 다른 것을 채워넣어 형상을 만드는 기법을 상감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둥의 넓은 면에 새긴 꽃의 모양이 거의 같다. 왜 그랬을까? 같은 꽃을 반복해서 새기면 지루해진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럴까? 새겨넣기 쉽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지루해지는 것보다 복잡하여 나타나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 일 것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모양과 무늬들로 말미암아 건물 전체가 복잡하여 자칫하면 혼란스러워지고 결과적으로 조잡스러워질 수 있는데, 꽃을 동일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양한 꽃이 기둥 면을 장식했다고 생각하고 기둥을 다시 한번 보자. 혼란스럽지 않은가?

 

천정도 빈틈없이 장식했다. 저렇게 화려하게 장식해도 고품격을 놓치지 않고 있다. 화려하고도 귀티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건물? 화려해서 오히려 지루하고 싫증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사람, 건물??? 돈들이고 욕얻어먹고... 이런 경우을 많이 보지 않았는가? 아무리 말려도 짙은 화장을 하고 다니려는 여고생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 건물을 짙은 화장을 하고도 짙은 화장이라 느껴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여자같다.

 

디와니카스를 봤으니 다른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빙 돌아서 나오니 정원 중간에 외로이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자파르 마할이란 이름을 지고 있는 건무리다. 이건 평지보다 조금 낮은 사각의 테두리 안에 자리잡고 있고 그 낮은 만큼의 위에 툇마루가 조성되어 있다. 아마도 사각의 테두리 안에는 물을 채워넣어 연회를 베푸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아니면 말고....인공 연못과 연회장???

 

창살의 장식 역시 화려하다. 모두 돌로 만든 것이다. 돌로 만들었으되 마치 나무로 만든 것 같다.

 

나가기 직전에 있는 사완파빌리온 역시 화려하다. 디와니카스에는 못미치지만 나름대로 아름답게 장식했다. 흰대리석이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인도 여행의 시작은 시시했다. 거리는 시끄럽고 쓰레기는 온곳에 뒹굴고 있다. 못차려입은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 북적인다. 혼잡하기 짝이 없다. 질서는 보이지 않는다. 소와 개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인도의 여행은 이렇게 항상 시작한단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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